▶ 균열 조짐 MAGA 진영, 커크 사망 계기로 한목소리… “굴복 않고 싸우자”
▶ 트럼프, 커크 부부 통해 지지층 흡수 노려…민주당 “중간선거 효과 제한적”

에리카 커크와 포옹한 트럼프 대통령[로이터]
31세의 나이로 암살범의 총격에 세상을 등진 청년 우파 운동가 찰리 커크의 죽음이 미국 보수진영의 재결집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를 앞세운 보수진영의 강력한 지지를 업고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균열 조짐을 드러냈다.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 격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공개적으로 다툰 끝에 결별한 데 이어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연루 의혹과 그에 대한 대처 방식을 놓고 공화당은 분열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시설 공격 등 각종 국제 갈등 이슈에 대한 적극적 개입은 고립주의를 지향하는 마가 진영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커크의 죽음은 내년 중간선거 승리를 통한 정권 재창출이 당면 과제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호재로 작용하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애리조나주 교외 글렌데일의 스테이트팜 스타디움에서 열린 커크의 추모식에서 "부흥회 같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대로 참석자들은 커크를 예수, 모세, 사도 바울, 순교자 스데반 등에 비유하며 커크를 기렸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앞에 두고 숨을 거둔 모세, 죽음으로 교회의 부흥을 이끈 스데반의 서사를 커크의 죽음과 연결지으면서 보수주의의 부활과 재결집으로 이어지기를 갈망하는 메시지로 읽혔다.
이들은 조금씩 표현은 달리 했지만 전장의 독전관처럼 "무릎 꿇느니 서서 죽자", "두려워하지 말자"고 말했다. 순례객처럼 일부는 십자가까지 메고 온 관중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손팻말로 호응했다. 마지막 연사 트럼프 대통령은 "싸우자"(fight)를 연호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사태를 "선과 악의 전투"로 규정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발언을 상기시키며 커크의 추모식이 "종교 전쟁 이미지"로 그려졌다고 묘사했다.
커크와 그의 살해범을 용서한 아내 에리카가 '사랑과 포용'을 강조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추모식 연단에 오른 정치인들은 '응징'을 다짐한 셈이다.
성경에 담긴 상반된 가치가 같은 자리에서 설파됨으로써 커크의 죽음이 안긴 슬픔을 위로하는 동시에 분노를 자극함으로써 지지층의 힘을 한데 모으는 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커크의 죽음 이후 그가 이끌던 단체 '터닝포인트 USA'의 지부 개설 요청이 전국에서 수만 건 쇄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커크는 전국의 대학을 돌면서 공화당이 약세인 20·30 세대 공략에 앞장서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커크를 '순교자'로 칭송하고 에리카를 끌어안은 것에는 커크의 지지층을 흡수하려는 정치적 포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커크의 암살을 조롱하거나 옹호하는 이들을 연방 정부 곳곳에서 축출하는 한편, 이에 비판적인 언론사와 언론인을 공격하면서 커크 지지층의 호감을 사려 하는 모습이다.
차기 공화당 대통령 후보군의 앞줄에 있는 JD 밴스 부통령이 커크의 빈자리를 대신해 그의 팟캐스트를 진행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이 머스크와 추모식장에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이들의 정치적 재결합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역대 중간선거는 대체로 집권당에 불리하게 흘러갔으며, 트럼프의 외교·이민·경제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여전히 큰 상황에서 커크의 죽음이 가져올 효과가 상쇄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민주당 전략가 더그 소스닉은 WSJ에 내년 중간선거 역시 "과거의 비(非)대선 해 선거 패턴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며 "커크의 죽음이 투표율 면에서 공화당을 도울 수 있겠지만, 결국 집권당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