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기 우리밖에 없을까?

2025-09-17 (수) 12:00:00 정숙희 논설위원
크게 작게
잘 만들어진 공상과학영화 중에 ‘콘택트’(Contact, 1997)가 있다. 조디 포스터가 열연한 이 영화에서 훗날 명민한 천문학자가 되는 어린 앨리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다른 행성에도 사람이 있을까요?” “잘 모르겠다만 만약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겠지.”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2조개의 은하가 있고, 우리 은하에만 약 4,000억개의 별들이 있다고 한다. 그 많은 은하 속의 그 많은 별들의 총합은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되는 숫자다. 이 별들이 각자 적어도 1개 이상의 행성을 갖고 있을 테니, 그 어마어마한 수의 행성들 가운데 생명이, 나아가 지적생명체가 사는 곳이 지구 외에 하나도 없다고 보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생명체의 존재가 확인된 단 한 개의 행성이나 위성도 찾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주 항공우주국(NASA)이 발표한 뉴스는 과학계를 크게 흥분시켰다. 화성에서 탐사 중인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 로버가 ‘잠재적 생명체 흔적’을 발견했다는 소식이다. 퍼서비어런스는 2021년 고대 삼각주로 추정되는 예제로 크레이터(Jezero Crater)에 착륙해 탐사해왔는데, 지난해 채취한 퇴적암 샘플에서 다채로운 반점처럼 보이는 부분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런 반점은 미생물 생명체가 암석 내 유기탄소, 황, 인 등의 원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했을 때 남기는 흔적”이라고 설명한 나사는 “이 발견은 우리가 지금까지 화성에서 발견한 것 중 생명체에 가장 근접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진짜 생명체나 미생물도 아니고, ‘잠재적’이며 ‘흔적’일 뿐인 암석의 ‘반점’을 두고 웬 호들갑인가 싶기도 하다. 게다가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올해 초 나사는 탐사선 ‘오시리스 렉스’가 소행성 ‘베누’에서 채취해온 돌과 먼지 시료에서 지구생명체의 DNA를 구성하는 핵심요소를 포함한 33종 아미노산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이런 소행성이나 파편이 수십억년 전 지구에 떨어져 생명체의 재료를 전해주었다는 가설에 힘이 실리는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2020년에는 금성의 대기에서 생명체가 내뿜는 것으로 추정되는 포스핀(PH 3)과 암모니아가 발견됐다는 국제연구팀의 관측결과도 나왔다. 이 발견은 2024년 또 다른 연구팀의 추가관측으로 확인됨으로써 불지옥과 같은 금성의 황산구름에서도 어떤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외계생명에 대한 인류의 호기심은 아주 오래되었다. 그 중에서도 지구와 가장 가까운 화성에 대한 관심은 특별한 것이었고,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화성에 생명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19세기 이태리의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는 망원경으로 화성의 표면을 관측해 수많은 직선과 곡선으로 연결된 운하처럼 보이는 카날리를 그렸다. 그의 작업에 이어 미국의 퍼시벌 로웰은 애리조나주 플랙스태프의 언덕에 천문대를 건설하고 더 자세한 운하들의 지도를 완성했다. 그는 화성 전역에 거대한 관개시설이 돼있으며, 지구인보다 더 현명한 종족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H.G. 웰스가 쓴 ‘우주전쟁’(1898)은 외계인이 등장하는 최초의 공상과학소설로, 화성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는 이야기다. 1938년, 오손 웰스가 이 소설을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해 방송했을 때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실제로 화성인들이 공격한다고 믿고 겁에 질려 거리로 뛰쳐나왔던 일은 유명하다.

하지만 1965년 나사의 마리너 4호가 화성을 최초로 근접촬영하고, 75년 바이킹 1호와 2호가 화성에 착륙해 수많은 사진을 보내온 이후, 화성에는 물도 운하도 생명체도 없음이 확인되었다. 현재 화성에서는 미국이 보낸 마스 오디세이, 큐리오시티, 오퍼튜니티와 스피릿, 퍼서비어런스가 탐사하고 있으며 유럽과 중국이 보낸 궤도선과 로버들도 활동하고 있다.


화성에서 발견된 ‘잠재적 생명체 흔적’은 고대 화성의 생물이나 미생물, 또는 앞으로 출현할 생명체의 시작일 수도 있다. 지구도 45억년 역사에서 미생물들은 30억년 이상 살아왔지만 동식물은 5억년 전에야 출현했다. 화성에서 생명을 찾는 연구도 어쩌면 세균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문제는 암석 표본을 지구로 가져와 분석해야 확실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시기가 요원하다는 것이다. 나사는 로버가 채취한 시료들을 2030년대 초 회수할 계획이었으나 트럼프의 예산삭감으로 2040년 이후, 혹은 무기한 미뤄졌다.

생명의 기원, 지구의 기원, 우주의 기원을 밝혀내는 일은 인간 존재의 근원과 관계된 일이다.

천문학은 세 가지 질문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혼자일까? 이 질문에 대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쓴 영국의 SF소설가이자 미래학자 아서 클라크는 이렇게 말했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우주에 우리만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다 똑같이 무서운 일이다.”

<정숙희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