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심리에 ‘자리 지키기’
▶ 코로나 ‘잡 호핑’과 대조
▶ AI 발전·자동화도 요인
▶ 경력 정체 등 문제점도
“그냥 지금 직장 있을래”
최근 미 전국 노동시장이 신규 채용이 급감하는 등 불안정하고 악화되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근로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릿저널(WSJ)과 뉴스위크 등 언론들에 따르면 최근 ‘잡 허깅’(Job Hugging) 경향, 즉 불만족스럽더라도 현재 직장을 떠나지 않고 버티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잡 호핑’(Job Hopping·이직을 통한 연봉 상승 추구)이 활발했던 분위기와는 크게 대조적이다.
연방 노동통계국(BLS)의 퇴사율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2.3%였던 수치는 팬데믹 초기 2020년 1.6%로 하락했다가, 2021~2022년에는 3.0%로 치솟았다. 그러나 이달에는 2.0%로 급락했다. 2021~2022년 ‘대퇴사’(Great Resignation) 시기와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구인·구직 플랫폼 레주메빌더(ResumeBuilder.com)가 지난 8월 근로자 2,2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46%가 잡 허거로 분류됐다. 이들 중 95%는 ‘불안정한 노동시장 상황’을 이직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실제로 각종 고용 지표는 악화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7월 비농업 고용 증가는 7만3,000개에 그쳐 예상치(11만개)를 크게 밑돌았다. 8월에도 2만2,000개 증가로 전망치(7만5,000개)와 큰 차이를 보였다.
7월 구인 건수 역시 약 720만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만6,000건 감소했다. 지난해 9월 이후 최저치로, 예상치(740만건)도 밑돌았다. 특히 2021년 4월 이후 처음으로 구인 공고 수가 전체 구직자 수(740만명)보다 적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조사에서도 미국 직장인의 구직 신뢰도는 2013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리서치 업체 이글힐의 조사에서도 미국 근로자 대다수가 향후 6개월간 현재 직장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노동 시장이 냉각되고 인공지능·자동화가 일자리 불안을 키우는 상황에서 현 직장에 안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서도 이에 대한 문제점과 우려도 지적했다.
컨설팅 기업 콘 페리의 수석 파트너 맷 본은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근로자들이 더 높은 연봉을 찾아 과감히 회사를 떠났지만, 지금은 물가 상승과 불확실성 속에서 안정성을 붙드는 분위기”라며 “이로 인해 임금 상승세가 둔화되고 혁신도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용사인 서밋 그룹 솔루션스의 제니퍼 실케 CEO는 “직장인들이 현 직장에 너무 안주하면 성장을 멈추고 정체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고용 플랫폼 ‘임플로이먼트 히어로’의 케빈 피츠제럴드 전무는 “잡 허깅은 장기적으로 경력 정체를 초래하게 된다”며 “특히 젊은 세대는 다양한 근무 경험과 새로운 직장 도전을 통해 경력을 쌓아야 하는데 이를 놓치게 된다”고 말했다.
심리학자 클로이 카마이클 박사 역시 “좋은 직장에서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건강한 선택이지만, 공포와 결핍 심리에서 비롯된 잡 허깅은 불안정한 환경에 스스로를 가두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잡 허깅이 단순한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 내 문제 보고 기피, 열악한 근로 조건의 고착화, 회사와 직원 간 긴장 고조, 혁신 저하 등 구조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고용시장에서 이직보다 ‘자리 지키기’가 두드러지는 현상은 기업에게도 새로운 과제와 도전이 되고 있다. 인재가 머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입도와 생산성이 낮아지는 ‘마지못해 남은 근로자’(reluctant stayers)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
조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