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 칼럼] 데린쿠유를 마주하며

2025-09-16 (화) 12:00:00 박영실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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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는 동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공유한 나라다. 천혜의 자원이 풍부한 양파 같은 땅이다. 튀르키예를 횡단 하다 카파도키아를 방문했다. 카파도키아는 198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으로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다. 아나톨리아 고원은 수많은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현장이다. 그 지역의 바위들은 오래전에 세 번의 화산 폭발로 다양한 형태로 굳어졌다. 바위들은 특별히 응회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재질이 부드러운데 비가 오면 단단하게 되는 특성이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집단으로 이주한 장소를 방문했다. 안내자를 따라 지하도시 데린쿠유에 들어갔다. 지하도시 데린쿠유가 발견된 계기가 있다. 20세기에 의문의 닭이 실종되어 닭을 찾다가 지하도시를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데린쿠유는‘깊은 우물’이란 뜻이다. 그곳에 지하도시를 형성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동굴이 있었다. 그 당시 2만여 명의 수용이 가능한 대규모의 지하도시였다. 로마제국 박해를 피해 거주했던 가장 안전한 곳이었지만 모두 지하로 피신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크리스천들은 핍박과 맞서 신앙을 지키며 순교를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때는 튀르키예 역사의 판도가 바뀌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은 시기다.

동굴 속 지하도시를 빠져나올 때, 입구를 기억하지 못하면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 같은 곳이었다. 지하도시는 개미굴 같은 동굴이 120미터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일반인들에게 지하 55미터, 지하 8층까지 공개되었다. 지하에 마구간과 공동묘지, 맷돌 같은 돌이 있었다. 그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한 흔적들이 곳곳에 숨 쉬고 있는 듯했다. 적이 침입해 오면 돌 안으로 피신하고 돌문을 막았단다. 지금은 20여 개의 돌문이 남아 있다고 한다. 출입구를 안다고 해도 동굴에 한 번 들어가면 나갈 때 출입구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으리라. 필자와 팀원들도 서로 손을 잡고 몸을 숙이며 다녔다. 200여 개의 지하도시가 있는데 발견된 것은 십 분의 일 정도다. 지하도시의 신비는 베일에 싸인 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자연이 오롯이 숨 쉬고 있는 카파도키아에서 사람과 자연이 빚어낸 하모니의 경이로움을 마주했다. 우리는 삶의 다양한 변곡점을 지나며 때론 데린쿠유보다 더 깊고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을 마주할 때가 있다. 골목길에서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방향을 잃은 적도 있으리라. 자연이 오롯이 숨 쉬고 있는 카파도키아 데린쿠유에도 햇살이 자늑자늑하게 내려앉는다.

우리는 저마다 감당할 삶의 무게가 있다. 개인이 마주하는 데린쿠유와 공동체가 마주하는 데린쿠유가 있다. 각자 유연성을 갖고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빛이 차단된 깊고 긴 어두운 터널 속 데린쿠유에도 빛이 너울거린다. 저마다 각자의 은둔처와 피난처인 데린쿠유가 있을 테지만 현실과 대면하고 빛과 마주하길 소망한다.

<박영실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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