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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중국판 엔비디아’ 캠브리콘

2025-09-09 (화) 12:00:00 박일근 / 한국일보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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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4,200만 년 전 고생대가 시작되는 시기를 ‘캄브리아기’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이때 수많은 생물이 갑자기 등장하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 전엔 전혀 안 보이던 생물들이 화석으로 대거 발견되기 때문이다. 투구를 쓴 지네 모양의 삼엽충이 대표적이다. 껍질을 가진 무척추동물과 어류, 녹조류 등도 한꺼번에 나타난다. 이처럼 생물 다양성이 폭증한 것을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 한다.

■ 인공지능(AI) 기술 혁명으로 인한 변화가 캄브리아기 대폭발에 버금갈 것으로 보고 여기에서 이름을 따온 AI 반도체 설계 기업 캠브리콘(Cambricon·寒武紀)이 화제다. 16세에 중국과학기술대에 입학하고 25세에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천톈스(陳天石)가 31세였던 2016년 3월 15일에 세웠다. 화웨이의 공급사가 되며 2020년 상하이거래소에 상장됐을 땐 주가도 큰 폭으로 뛰었다. 이후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곤두박질쳤던 기업 가치는 중국 정부가 국산 AI 칩 사용을 적극 권장하며 기사회생했다. 지난해 4분기 흑자 전환한 데 이어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배 넘게 늘었다. ‘중국판 엔비디아’가 될 것이란 기대에 주가가 폭등, 지난달 말엔 구이저우마오타이를 제치고 황제주(최고가주)에 오르기도 했다.

■ 주가 상승세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1년간 6배 넘게 올라 거품이란 지적이 많다. 회사에서 직접 나서 ‘투자에 유의해 달라’고 경고할 정도다. 20배 안팎이 적정하다는 주가수익비율(PER)도 4,000배를 웃돌고 있다.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없지 않지만 이미 사 놓은 주식을 높은 가격에 팔기 위한 바람 잡기일 수도 있다.

■ 공교롭게 캠브리콘 설립일은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국에서 4대1로 승리한 날이다. 누구보다 AI의 위력을 현장에서 봤던 우리가 이후 정치적 혼란과 사법 리스크 등에 사실상 ‘잃어버린 10년’을 보내는 동안 중국은 드라마틱한 반도체 굴기를 이뤘다. 낙담할 필요는 없다. AI의 캄브리아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다시 한국이 드라마를 쓸 때다.

<박일근 / 한국일보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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