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엌에서 이어진 세월

2025-08-26 (화) 08:07:25 한연성 포토맥,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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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딸들의 집을 두 달여 만에 찾았다. 출발 전,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니 “김치”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건 다 있다고 했다.

주변 지인들이 나눠 준 호박, 오이, 깻잎, 가지를 챙기고, 김치를 담갔다. 혹시 몰라 마늘도 까 두었다. 집에 있는 밑반찬을 조금씩 싸다 보니, 남편 차는 어느새 가득 찼다.
마지막으로 과자, 라면, 김 등 간단한 먹거리를 사서, 조금 지루한 길이었지만 딸들을 본다는 생각 하나로 마음은 가벼웠다.

집 앞의 거대한 나무가 서서히 가을빛을 머금은 잎사귀로 나를 맞았다. 문 앞에서 반기는 딸들이 첫마디로 말했다.
“엄마, 더럽다고 혼내지 마세요.”
해가 뉘엿한 시각이라 안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두 달 전보다 훨씬 단정해진 모습이었다.


저녁은 내가 싸 온 김밥을 먹으려 했지만, 이미 사위들과 외식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들의 ‘최대의 배려’라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었다. 수다를 나누다 보니,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출근을 도왔다. 과일과 계란으로 몸단장을 한 김밥 도시락을 싸서 보내고 부엌에 섰다.
아파트에 살던 나는 맞벌이라 집안일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가정을 돌보는 일이 곧 삶이었던 시어머니는 분가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 바리바리 반찬을 들고 오셨다.
다행히 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과 살아와 어른들 입맛에 익숙했고, 시어머니 반찬을 잘 먹었다. 아들보다 식성이 좋은 며느리가 그 닥 이뻐 보이진 않았는지 오히려 미운 털이 박힌 듯했다.
“너는 세상에 맛없는 게 있긴 있니?”
웃으며 하신 말씀이었지만,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시어머니가 다녀가신 날이면 집은 반짝반짝 빛났다. 옷장을 열어 옷을 정리하고, 침대 이불을 걷어 빨고, 평소 관리하지 않던 베란다 바닥까지 말끔히 닦으셨다.
계단까지 걸레질해 놓으신 집은, 마치 새로 이사 온 집 같았다.
겉으로는 “고생하셨어요” 하면서도, 속으론 “감시” 당하는 기분’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선배들의 조언처럼 ‘어른이니 감사하자’고 마음을 바꾸니 어머니의 방문이 덜 힘들어졌다. 무엇보다 손주들을 바라보는 눈길만큼은 한없이 따뜻했다.

딸의 집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 시절 시어머니의 마음이 비로소 이해됐다.
내가 가져온 재료로 반찬을 만들려니 파도, 간장도 없다. 한국 마켓이 없는 곳이라 있는 재료로 가지볶음, 잡채, 오이무침, 호박전을 만들었다.
마늘이 나올 무렵 마늘쫑을 고추장에 박아 만든 장아찌를 내게 주시던 시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그땐 애교도 감사 표현도 서툴렀다. 다만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드린 용돈으로 마음을 대신했을 뿐이다.
저녁에 퇴근한 딸들이 말했다.
“오셨는데 음식까지 하셨어요? 죄송해요.”
나는 웃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아날로그 시대를 산 엄마가 너희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음식하고 청소하는 것 말고는 무엇이 있을까?
새삼, 시어머니가 보고 싶다.

<한연성 포토맥,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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