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내 농부 자살률도 전국 평균보다 25% 높아
워싱턴주 마운트버논에서 4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돈 맥모란은 매일 밭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가족 농장이 자신과 함께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두 딸 중 한 명은 농업에 ‘약간의 관심’을 보이지만 다른 한 명은 ‘절대 안 한다’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그의 고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연방 농무부 농업센서스에 따르면 2017년에서 2022년 사이 워싱턴주에서만 3,700곳의 농장이 문을 닫았다.
농민들이 떠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플레이션, 기후 변화, 무역 관세 등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과, 그로 인해 누적되는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다.
시애틀타임스는 23일자 특별기사를 통해 워싱턴주 농업과 농부들의 실태를 보도했다.
맥모란은 시애틀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면 기계를 새로 사고 땅도 살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지금은 죽도록 일을 하고도 은행에서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며, 수익 없는 노동이 농민을 어떻게 지치게 하는지 털어놓았다.
올해 워싱턴주 농업부 보고서에 따르면 농민 자살률은 전국 평균보다 25%나 높았다. 밤낮없는 노동, 정신건강 서비스 접근성 부족,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기에 건강보험, 유급휴가, 퇴직연금 같은 기본 복지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맥모란은 행동에 나섰다. 그는 워싱턴주립대 심리학 클리닉과 협력해 농민과 농장 노동자에게 6회 무료 상담권을 제공하는 ‘치유 바우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대면뿐 아니라 온라인 상담도 가능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피자 포 프로듀서(Pizza for Producers)’라는 모임을 열어 농민들이 직접 피자를 만들며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고립된 노동 환경에서 벗어나 정신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취지다.
하지만 농민들의 고충은 경제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각종 보조금 신청이나 대출 상환 조건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이를 해석하기 위해 전문가를 고용하는 농가도 있다.
맥모란은 “워싱턴주의 규제가 타 주보다 훨씬 강하다”며 행정 부담이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농업 대물림의 단절이다. 자녀들은 부모 세대가 겪는 고통을 지켜보며 농업을 외면하고, 농민들은 “선조들이 힘들게 일군 농장을 내 손에서 잃을 수 없다”는 압박감 속에 살아간다. 맥모란 역시 딸들이 농업을 잇지 않겠다고 해도 탓하지 않는다. 그는 “이 일은 고되고 수익은 적다”며 솔직하게 말했다.
톰 덴트 워싱턴주 의원은 “농민들이 돈을 벌 때는 최고의 직업이지만, 손해를 보며 하루하루 버티는 것은 견디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업 규제가 경제적 부담을 더 키우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업은 단순한 직업을 넘어 가족의 역사와 정체성이다. 그러나 지난 5년간 3,700곳이 사라진 현실은 그 토대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시애틀타임스는 평가했다.
맥모란은 “언젠가 농민 자살 예방 활동이 필요 없는 날이 오길 바란다”며, 올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농민 지원이 절실한 시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