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펑화와 번영의 질서 해치는 트럼프 관세

2025-08-06 (수) 12:00:00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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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관세 위협과 무역협상의 눈보라 속에서 미국인들은 세계 정세의 지각번동이라는 커다란 흐름을 놓치고 있다. 개방형 세계 경제의 창시자이자 버팀목인 미국은 현재 모든 교역국을 상대로 거의 한 세기만에 가장 높은 평균 관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이제 미국은 세계 주요 경제국 가운데 가장 높은 관세장벽을 구축한 국가다.

트럼프 행정부는 각국의 무역 장벽과 관세 철폐를 위해 지난 80년간 미국이 일관되게 추진해온 경제 및 외교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고 있다. 트럼프 정책 혁명의 효과는 오늘날의 주가가 아니라 그 결과로 나타날 미래의 세계상으로 측정되어야 한다.

협상 타결을 발표할 때마다 백악관은 미국 상품의 접근을 허용치 않던 외국 시장의 굳게 잠긴 문을 트럼프 대통령이 강제로 열어 젖히기라도 한 듯 자랑스레 떠벌린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유럽의 싱크탱크인 브뤼겔에 따르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유럽연합(EU)이 부과해온 평균 관세율은 1.35%, EU 상품에 적용되는 미국의 관세율은 1.47%였다. 종종 보호주의국가로 간주되는 일본조차 미국 상품에 펑균 3% 정도의 관세를 때리는데 그쳤다. 이에 비해 일본 상품에 매기는 미국의 평균 관세는 대략 1.5%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유무역 세계에서 관세는 대체로 무시해도 좋을만큼 낮았다. (물론 비관세 장벽을 지닌 국가도 더러 있지만,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시장은 트럼프가 ‘해방의 날’에 제시했던 것만큼 상호 관세율이 높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되는 천문학적 관세에 조건화되었던 탓에 투자자들은 여전히 높지만 예상보다 낮은 관세에 안도했다. 어쨌거나 미국 경제는 대체로 국내 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1%에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현재 미국 경제는 주로 서비스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농업부문의 일자리 중 86%가 서비스업에 몰려 있다. 경제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서비스업 부문에서 미국은 지난 2024년 거의 3,00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또한 트럼프에게 서비스업은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관세협상 대상에서 벗어났다. 그의 향수어린 시각에서 경제력이란 단지 ‘무언가를 제조하는 능력’에 관한 것이다.

MAGA 지도자들은 트럼프가 EU, 일본과 한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떠들어댄다. 미국이 거대한 시장과 동맹국의 입장에서 제공하는 안보 우산을 지렛대삼아 이들 국가에 특벌한 영향럭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트럼프 대통렁이 제대로 인지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그는 지정학적 위협이 높아지는 시기에 지정학적 현실을 이용해 미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국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양보를 강요한다. (이에 따라 EU로 들어가는 미국산 물품에 대한 평균 관세는 1.35%에서 제로에 수렴하는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작은 성과를 미국의 승리로 보는 것은 경제학을 오해하는 것이다. 무역전쟁에서 승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미국은 자국의 소비자들에게 관세비용의 부담을 떠맡기고 있다. 다시 말해 빈곤층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은 매우 역진적인 세금으로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저소득층에 속한 미국인들이 코스코와 월마트 같은 매장에서 식료품과 옷을 구입할 때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미국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같은 관세가 가저율 가장 광범위한 영향은 세계 경제의 기본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과거 수십년 동안 세계 각국은 글로벌 시장에 대한 정부의 임의적인 개입과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역사를 통틀어 정부는 무역을 조작해 거대한 왜곡을 초래했고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기 보다는 정치적으로 강력한 국내시장 수호자들을 만들어 냈다.

미국은 이러한 경향에 맞서 성공을 거둠으로써 더 나은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미국의 첨단기술업체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일본의 소니와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같은 시장 선도 업체들로부터 배우고, 결국 이들을 뛰어넘으면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게 됐다. 이는 대체로 세계 시장의 치열한 경쟁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진입중인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기업들은 세계 시장 시스템의 정치학을 익히는데 시간과 지력을 사용해야 한다. 그들은 관세가 낮은 국가에 우선적으로 물품을 운송한 다음 미국에 수출할 것이다. (관세가 붙은) 상품은 실제보다 낮게 청구하고, 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물품은 다양한 처리 비용을 실제보다 높게 청구할 것이다. 로비 노력도 한층 강화될 것이다. 이미 미국의 최고 기업들은 면제와 특혜를 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워싱턴을 방문한다. 과거 세금과 규제에 반대했던 대기업 중역들이 지금은 트럼프 행정부가 멋대로 나누어주는 특혜와 응징에 환호한다.

모든 정부는 경제에 자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좋아한다. 지난 80년 동안 미국은 이들을 압박해 시장의 힘에 굴복시키고, 시민사회가 국가에 맞서 힘을 얻게끔 만들었다. 모든 국가들이 펑화를 유지하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무역 시스템을 구축했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이 경제적·지정학적으로 서로 의존하면서 하나로 엮어진 무역 생태계를 조성했다. 이처럼 평화롭고 번영하는 세계를 창조한 미국이 지금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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