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훈 vs 프론트맨’ 가치관 논쟁에 마침표…민주주의 허점 날카롭게 비판
▶ 시즌1 장면·대사 ‘수미상관’으로…기발한 게임 통한 장르적 재미는 줄어

‘오징어 게임’ 시즌3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우리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27일(한국시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에서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은 잔인한 서바이벌 게임을 지켜보는 VIP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이렇게 일갈한다.
그리고 사람다움이 어떤 것인지를 온몸을 내던져 증명해낸다.
기훈이 부르짖은 '사람'이야말로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서바이벌 게임 주최자였던 오일남(오영수), 그의 자리를 이어받은 프론트맨(이병헌)은 모두 기훈을 향해 "아직도 사람을 믿나?"라고 질문을 던진다. 마치 그가 세상을 깨닫지 못했다는 듯이.
어렴풋이 '사람에 대한 믿음'만 갖고 있던 기훈은 여러 고난을 겪은 뒤 시즌3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면서 이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내놓는다.
그렇다고 '오징어 게임3'이 모든 사람 내면에 선함이 있으며,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훈화로 마무리되진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스스로 타협하지 않아야만 인간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한다.
오징어 게임 참가자 456명은 모두 돈 때문에 이 게임에 뛰어들었다. 이들 대다수는 좀 더 많은 돈을 움켜쥐려 인간성을 손쉽게 내던진다.
참가자가 죽을 때마다 늘어나는 상금에 환호하고, 더 많은 돈을 얻어가기 위해 갓난아기까지 죽이려 든다.
시즌3은 게임 참가자들의 반란이 실패한 지점에서 시작된다. 기훈과 함께 게임을 끝내려던 이들이 한꺼번에 죽자 일부 참가자는 "덕분에 상금이 늘었다"며 기훈에게 빈정대듯 감사 인사를 건넨다.
인간을 향한 믿음은 물론, 자신에 대한 믿음까지 잃은 기훈은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그런 그를 수렁에서 끌어올린 것은 김준희(조유리)가 숨바꼭질 게임 와중에 낳은 아기다.
준희는 돈 앞에서 비열해지는 아이 아빠 이명기(임시완)보다 기훈을 믿고, 노인 장금자(강애심)도 기훈에게 "선생님을 믿는다"며 죽기 직전까지 간곡히 아기와 엄마를 지켜달라고 속삭인다.
지켜야 하는 것이 생긴 기훈은 참가번호 456번이 달린 자기 체육복을 포대기 삼아 아기를 품에 안고 게임에 참가한다.
내버려 두기만 해도 죽을 수 있는 약하디약한 신생아를 이 아귀다툼에서 지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 아기가 참가자로 분류되면서 1인당 나눌 상금이 적어지자 나머지 참가자들은 한층 위협적으로 군다. 심지어 생부인 명기마저도 아이보다는 돈이 우선이다.
기훈과 정반대 가치관을 가진 프론트맨이 등장해 신념을 흔들기도 한다
최종 게임을 앞두고 프론트맨은 기훈을 불러내 단도를 쥐여준다. 그리고 잠든 참가자들을 죽이면 기훈과 그가 지키려는 아기는 살 수 있다고 '조언'한다.
기훈은 곯아떨어진 참가자의 목덜미에 칼끝을 갖다 대고 고민하지만, 끝내 찌르지는 못한다.
과거 프론트맨이 오일남으로부터 같은 단도를 받고 다른 참가자들을 모조리 죽였던 것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다.
프론트맨은 시즌2에서 기훈을 향해 "영웅 놀이를 한다"고 조롱했지만, 시즌3에서 돈이 아니라 사람이기를 택한 기훈의 최종 선택에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오징어 게임3' 속 허울만 남은 민주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눈에 띈다.
시즌2에서는 게임 진행 여부를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다수결 민주주의의 허점을 꼬집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노골적으로 공평과 공정을 운운하는 다수의 논리가 얼마나 불공평하고 불공정한지를 보여준다.
결승전에서는 총 9명의 참가자 가운데 최대 6명까지 살아서 456억원을 나눌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데, 건장한 남자 참가자들이 다수결을 내세워 아기와 기훈 등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이들은 "민주적으로 투표로 결정했다"라거나 "우리가 토론해서 민주적으로 결정한 거예요. 미안하지만 좀 죽어주세요"라며 자신들이 멋대로 결론을 내고, 민주적이라는 껍데기를 씌워 포장한다.
2021년 시즌1, 2024년 시즌2에 이어 이번에 나온 시즌3은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대단원인 만큼 앞서 나온 대사나 서사가 수미상관으로 호응하는 장면이 다수 담겼다.
일례로 기훈은 잠든 참가자의 목을 찌르려다가 "아저씨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강새벽(정호연)의 환영을 보고 포기한다.
이는 시즌1에서 졸던 조상우(박해수)의 목을 찌르려다가 새벽의 만류로 그만뒀던 장면과 겹친다.
시즌1에선 새벽이라는 외부 요인 때문에 인간성을 지켰다면, 시즌3에선 스스로 새벽을 떠올리며 살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차이점이다.
또 프론트맨이 시즌1에서 "당신들은 말입니다. 경마장의 말"이라고 냉소했을 당시 기훈이 "나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라고 했다면, 이번에는 "우리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라고 외친다.
비슷한 대사 같지만, 사람의 범위를 '나'에서 '우리'로 바꾸면서 의미가 확장됐다.
다만, 인간성 논쟁과 민주주의의 허점 등 여러 주제를 밀어 넣는 와중에 '오징어 게임'이 원래 갖고 있던 장르적 재미는 다소 퇴색된 인상이다.
시즌3에서 새롭게 나오는 게임은 숨바꼭질, 거대한 영희·철수 로봇이 좁은 다리 위에서 줄을 돌리는 대형 줄넘기, 최종 생존자 9명이 벌이는 고공 오징어 게임 등 총 3개다.
'오징어 게임'은 매 시즌 어린 시절 즐겨하던 한국적인 놀이에서 착안한 서바이벌 게임을 선보였지만, 이번에는 다소 신선함이 떨어진다.
대형 줄넘기는 높은 곳에 설치된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점에서 시즌1의 유리 징검다리 게임과 비슷하고, 마지막 게임인 고공 오징어게임 역시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 위에서 상대편을 어떻게든 밀어내면 승리하는 방식이라 시즌1 최종 라운드인 오징어 게임을 그저 높은 곳으로 옮겨놓은 느낌이다. 특히 마지막 게임은 한 명이 아니라 최대 여섯 명까지 생존할 수 있도록 해 전반적인 극의 긴장감이 느슨해졌다.
3개 시즌 내내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던 경찰 황준호(위하준)가 프론트맨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도 생각보다 맥없이 마무리됐다. 준호는 가까스로 프론트맨과 마주하지만,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한국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이 닫힌 결말에 이르렀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시즌은 의미가 있다.
역대 넷플릭스 TV쇼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흥행한 작품이 추가로 시즌제를 이어가지 않고 세 시즌만에 마무리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황동혁 감독은 추가 시즌 제작 가능성이 없다고 못 박았으며, 향후 스핀오프(파생작) 가능성만 열어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