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동의 숙적 이스라엘·이란, 트럼프의 ‘강권적 휴전’ 결국 수용

2025-06-23 (월) 07: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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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이란 핵 능력에 큰 피해 줬다 판단한 듯…장기전 부담도

▶ 무력해진 이란, 트럼프의 최후통첩식 경고에 마땅한 출구전략 없어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이스라엘과 이란이 23일(현지시간) 전격으로 휴전하기로 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권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전쟁의 장기화가 결국 자국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두 나라의 나름의 계산이 깔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먼저 시작한 이스라엘은 원하던 대로 미국을 끌어들여 자력으로 파괴가 어려웠던 이란의 핵심 핵시설에 큰 피해를 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반면 이스라엘과의 교전에서 예상보다 취약한 모습을 노출한 이란은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과 계속 싸웠다가는 정권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어 숨 돌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휴전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서 이스라엘과 이란이 휴전에 합의했다며 양국이 24시간의 휴전을 거쳐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낼 것이라고 '깜짝' 발표했다.

아직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만 있고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이란이 실제 휴전을 이행할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휴전이 성사된다면 지난 12일(미 동부시간 기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두 국가의 전쟁이 12일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되는 셈이다.

당초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시작했다.

따라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아무리 동맹인 미국이 휴전을 중재하더라도 자국에 실존적인 위협이 되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판단해야 휴전에 동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오랜 '간청'을 받아들여 지난 21일 이란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에 있는 3곳의 핵시설을 타격한 게 이스라엘을 설득하는데 주효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특히 포르도 핵시설의 경우 지하 깊은 곳에 있어 이스라엘 자체의 재래식 전력만으로는 공략이 불가능하고 미국만이 보유한 GBU-57 벙커버스터 폭탄과 이를 실어 나를 수 있는 B-2 폭격기가 필요했다.


미국이 벙커버스터를 처음으로 실전에서 사용해 가한 공습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이란의 핵시설을 완전히 파괴했는지는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상당한 피해를 줘 이란의 핵개발을 늦췄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또 이스라엘이 큰 어려움 없이 이란의 주요 군사시설을 공습하면서 전쟁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이스라엘도 피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이스라엘의 방공망이 그간 이란이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을 대체로 성공적으로 방어해냈지만, 적 미사일을 격추하는 데 쓰이는 요격미사일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해왔다.

이란 입장에서는 휴전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출구 전략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보다 휴전이 더 절박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란은 '중동의 강자'라는 그간의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이번에 이스라엘의 공격 앞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란의 노후화된 공군력과 방공망은 이스라엘의 공습에 무력했고, 이란이 보유한 막대한 지상군은 이스라엘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스라엘에 닿을 길이 없는 상황에서는 사실상 쓸모가 없었다.

이스라엘을 공격할 유일한 수단인 탄도미사일과 드론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의 방공망을 뚫지 못했고 작년에 이미 이스라엘을 상대로 상당량을 쓴 탓에 보유량이 많지 않은 것으로 추정됐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방공망에 큰 피해를 준 덕분에 지난 21일 3개 핵시설 공습 때 미군의 전투기와 폭격기는 이란 영공을 안방 드나들듯 침투했다.

심지어 이란은 미군 폭격기가 폭탄 투하를 마치고 이란 영공을 벗어난 뒤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식했다고 댄 케인 미 합참의장은 밝힌 바 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 시도하면 더 강력한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이란에 협상 외에 별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당국자들은 이란의 정권 교체가 목적이 아니라고 대외적으로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SNS에 "만약 현 이란 정권이 이란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왜 정권 교체가 없겠느냐"라고 적어 처음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 뿐아니라 그동안 이란의 대리세력으로 이스라엘을 사방에서 위협해왔던 팔레스타인의 무장정파 하마스,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크게 쇠락했거나 아예 몰락해 이란을 지원하지 못한 점도 전쟁을 지속하는 데 큰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단순히 시간을 벌고 추후에 핵무기 개발을 다시 추진할 의도로 휴전에 합의했는지, 아니면 미국과 협상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할 진정성이 있어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이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싸움을 중단시키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이날 카타르에 있는 미군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해 보복에 나선 것은 휴전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하려고 한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의 공습에 분노한 자국민 여론과 강경파를 달랠 필요가 있는 가운데 미국과의 확전은 피해야 하다 보니 미군을 공격하되 계획을 사전에 알려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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