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싸우게 두는 게 나을 수도”… 우크라 평화 협상 발 빼나
2025-06-09 (월) 12:14:08
▶ ‘애들 싸움’ 빗대며 중재 포기
▶ “대러 정책 실패 자인” 비판
▶ 러, 미사일·드론 보복 공습

지난 6일 러시아의 드론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건물 위로 화염이 치솟고 있다.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분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휴전 협상이 진척되지 않는 데 불만을 터뜨려 온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 의욕이 꺾이고 있다는 신호다. 향후 미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백악관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만나 “두 아이가 미친 듯이 싸울 땐 잠시 싸우게 두었다가 떼어놓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러시아 추가 제재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 질문을 받고 확답 없이 ‘갈등이 격해 당장 휴전 중재가 어렵다’고 답한 것이다.
해당 발언을 WSJ는 “전쟁 중재 시도가 실패했음을 직설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 미국 대선 기간 자신이 취임하면 24시간 내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이날은 태도를 180도 바꾸고 중재 불가를 선언한 셈이다. 미국 CNN방송도 “하루 만에 전쟁을 끝내겠다던 트럼프의 좌절스러운 변화”라고 지적했다.
막대한 인명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전쟁을 ‘애들 싸움’에 빗댄 점도 비판받았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을 시작했고 현재도 휴전을 가로막고 있는 장본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라는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양쪽 모두 고통받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피해를 동일 선상에 놓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고립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재 중단’이 곧 ‘우크라이나 버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 협상이나 에너지 공급 문제 등에서 러시아와 교류를 확대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제프리 에드먼즈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러시아 국장은 WSJ에 “이제 관건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최소한의 군사 지원이라도 유지할 것이냐는 문제”라고 전망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또 때렸다. 키이우 당국은 이날 러시아의 미사일·무인기(드론) 공습이 이어져 최소 4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날 우크라이나가 지난 1일 자국 공군기지를 드론으로 공격한 데 대한 보복 의지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미국·독일 정상회담은 비교적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지난달 취임 뒤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 메르츠 총리는 독일 공영 도이치벨레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세 문제 등을 강도 높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간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반유럽’ 및 ‘독일 극우 옹호’ 기조 탓에 회담이 자칫 파국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현실화하지는 않은 셈이다. 메르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본 유럽 정상들에게 사전에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