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내세운 정책 기조는 명확하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불법체류자 대규모 추방’을 강행하겠다는 반이민 정책과, 중국산 제품을 겨냥한 고율 관세를 중심으로 한 보호무역주의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기조는, 영화 ‘멕시칸 없는 하루’와 책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에서 이미 경고된 것처럼, 오히려 미국 사회를 깊은 혼란과 마비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04년 개봉한 영화 ‘멕시칸 없는 하루’는 캘리포니아에서 멕시코 출신 이민자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졌을 때 벌어지는 혼란을 코믹하게 담아냈다. 캘리포니아 인구의 3분의 1, LA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멕시칸들이 종업원, 농장노동자, 건설 인부 등 사회의 필수 인력을 담당하고 있기에 그들의 부재는 곧바로 일상생활과 경제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진다.
실제로 2006년 ‘메이데이 보이콧’에서 멕시칸 근로자들이 하루 파업을 벌이자 LA 한인타운도 직격탄을 맞았다. 한인 식당 손님이 줄고, 배달이 중단되며, 일상 자체가 마비됐다.
이것은 단순히 영화적 상상이나 한인타운만의 문제가 아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의 불법체류자는 1,050만 명, 그중 38%가 멕시코 출신이다. 또 연방 농무부 집계로 보면 농장 노동자의 41%가 서류미비자이며, 이민자 없는 농업과 식품 가공업은 곧바로 멈춰선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규모 추방은 농업과 식품 산업에 치명적 타격을 주며, 결국 식료품 가격 폭등으로 이어질 것”이라 경고했다.
이처럼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의 ‘숨은 기둥’이다. ‘불법’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지만, 그들이야말로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저임금·기피직종의 실질적 노동력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추방 정책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사실상 미국 경제의 동맥을 스스로 끊는 셈이다.
보호무역 정책도 마찬가지다. 2005년 출판된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라는 책에서 프리랜서 기자 사라 본지오르니 가족은 중국산 제품을 1년간 보이콧하는 실험을 벌였다. 결과는 실패였다. 장난감, 전자제품, 일용품 등 생활 곳곳에서 중국산을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월마트에 진열된 제품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이라는 통계는, ‘중국산 없이 살기’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 얽힌 ‘글로벌 공급망의 덫’을 상징한다. 미국은 첨단 기술의 ‘두뇌’를 갖고 있지만, 생산은 여전히 값싼 중국 노동력에 의존한다. 중국도 IT기기의 반도체 등 핵심부품을 수입에 의존하기에 양국은 결코 ‘영원한 적’이 될 수 없다.
글로벌화의 함정에서 모든 망을 소유할 수는 없고, 그저 관리할 뿐이다. 트럼프식 보호무역은 결국 소비자 가격 상승과 기업의 생산비용 폭증으로 이어져 미국 경제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멕시칸 없는 하루’를 현실로, ‘중국산 없는 세상’을 무역전쟁으로 실현하려 든다면, 미국 사회가 맞이할 것은 이민자 없는 식탁과 텅 빈 상점, 그리고 마비된 일상일 것이다. LA시를 비롯한 대도시 지방 정부가 ‘피난처 도시’를 선언하고, 연방 법원이 고율 관세 중단 판결을 내리는 것은 이런 위험을 직감한 움직임이다.
영화와 책이 보여주듯, 이민자와 글로벌 공급망의 존재는 미국 사회의 ‘그림자 노동력’이 아니라 실질적 생존의 축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보호무역 정책이 ‘애국심’으로 포장되더라도, 그것이 초래할 경제적·사회적 재앙은 분명하다.
특히 이러한 반이민·보호무역 정책은 한인사회에도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이민자 대규모 추방은 한인업소의 인력난과 물류 차질을 불러오며,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는 생활물가 상승과 함께 한인업계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한다.
결국 이민자와 중국산 제품의 역할을 인정하고, 이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만이 미국 경제의 회복력을 지키는 길이다. 이를 간과한 트럼프식 정책의 종착지는 멕시칸 없는 세상을 중국산 없이 버텨야 하는 악몽을 현실로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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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부국장대우ㆍ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