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 칼럼] 와디 럼(Wadi Rum)과 베두인

2025-06-03 (화) 12:00:00 박영실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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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아랍의 심장이라 일컫는 요르단에 봉사활동을 갔다. 일행과 함께 요르단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왕의 대로를 통과해 와디 럼(Wadi Rum)에 도착했다. 시간과 자연이 빚어낸 사막과 협곡에 시선이 멈추었다. 붉은 사막 와디 럼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와디 럼은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도시인 아카바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요르단은 북쪽으로 시리아, 남쪽으로 사우디, 동쪽으로 이라크가 둘러싸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땅으로 지중해의 해수면보다 420미터 낮다. 요르단의 기후는 건조한 사막 기후다. 최근에 요르단의 사막 밑으로 흐르는 수로를 발견했단다. 그곳에 향후 150년 이상 사용할 생수가 흐른다고 한다.

유목민 베두인들의 와디 럼 텐트에서 1박 2일 광야체험을 했다. 베두인들은 그들의 전통음식으로 우리를 대접했다. 베두인은 아랍어로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베두인들이 음식을 만드는 모습에 시선이 흘러갔다. 그들은 숯불을 피운 모래구덩이에 음식 재료를 넣었다. 숯불과 모래의 열로 네 시간 정도 음식을 준비했다. 만사포(양고기 찜)와 자미드(염소고기), 카다예프(요르단 만두)와 다양한 구이 요리였다. 만사포와 자미드는 유목민들의 삶과 음식문화를 대표한다 할 수 있다. 베두인들의 전통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그들 삶의 다양한 면을 나타낸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보며 그들의 삶을 가늠해 보았다. 광야 생활을 견디는 것이 그들의 삶인 듯했다.

음식은 삶이다. 개인과 그 민족의 문화와 역사, 민족성을 반영한다. 베두인들은 모래구덩이에 식재료를 넣고 오랜 시간 동안 그 앞에서 음식이 완성될 때까지 지키고 있었다. 와디 럼에서의 삶은 인내심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이다. 그들은 광야에 거주하며 그곳을 지나는 동안 잠잠히 침묵하며 견디는 법을 체득한 듯했다. 베두인들의 삶이 스며든 음식을 먹으며 와디 럼과 베두인들의 삶을 묵상해 보았다. 초고속으로, 목표지향적으로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베두인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바위산 능선에 업힌 주홍빛 노을 풍경이 장관이었다. 별들이 와디 럼의 어둠을 마중 나왔다. 별빛이 내려앉은 와디 럼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의 광야 생활을 가늠해 보았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너 머물렀던 광야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광야를 지나며 나의 와디 럼을 대면하는 시간이었다. 와디 럼에서 느림과 인내, 내려놓음과 마주했다. 와디 럼은 단순한 광야가 아니라 삶을 다시 점검하는 공간이었다. 붉은 모래와 거대한 바위산이 침묵 속에서 잠잠히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우리는 저마다 삶의 무게를 안고 사막을 지나고 있으리라. 와디 럼과 베두인이 건네준 지혜를 길어 올리며 광야를 걷는다면 어떨까.

<박영실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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