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포·부천 투표함에서는 지난해 총선 투표용지 발견
▶ 정치권·시민단체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 관리자 주의의무 저버려”
▶ 전문가들 “부실관리에 따른 합당한 처분·조치 이뤄지도록 제도적 정비 필요”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둘째날인 30일 서울 서대문구 구 신촌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신촌동사전투표소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전날 이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외부로 반출되는 일이 발생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부실 책임을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2025.5.30
한국에서 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기간에 투표용지를 반출하거나 대리 투표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선거관리 당국의 부실한 관리 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
30일(한국시간) 경찰에 따르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공직선거법상 사위투표 혐의로 선거사무원 A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A씨는 전날 정오께 강남구 대치2동 사전투표소에서 남편의 신분증으로 투표용지를 발급해 대리투표를 마친 뒤 5시간여 뒤 자신의 신분증으로 투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당일 오후 5시 11분께 "투표를 두 번 한 유권자가 있다"는 무소속 황교안 대선 후보 측 참관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A씨를 긴급체포했다.
강남구 보건소 소속 계약직 공무원인 A씨는 대선 투표사무원으로 위촉돼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에서는 지난해 치러진 22대 총선의 투표용지가 대선 사전투표소 투표함에서 뒤늦게 발견된 상황도 발생했다.
이날 오전 5시 25분께 김포시 장기동행정복지센터에 있는 관내 사전투표함에서 22대 총선 투표용지 1장이 나왔다.
당시 사전투표에 앞서 선관위 관계자와 참관인이 투표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김포시갑선거구의 투표지가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다.
비슷한 시각 부천시 신흥동행정복지센터에 있는 관내 사전 투표함에서도 22대 총선 당시 인쇄된 부천시갑선거구 투표용지 1장이 발견됐다.
경기도선관위 관계자는 "봉쇄·봉인 전에 투표함 안쪽을 살펴보다가 투표용지를 발견해 회수했다"며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서울 서대문구 옛 신촌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밖에서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들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한 유튜브 채널 생중계에 포착됐다.
관외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기다리던 일부 시민이 투표용지를 소지한 채 투표소 밖으로 나와 식사하고 돌아왔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앙선관위는 사전투표소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반출 논란과 관련해 "사전투표 과정에서 관리 부실이 있었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다만 "기표 대기 줄이 길어진 상황에서 투표용지 발급 속도를 조절하지 못했다"며 "투표소 밖에서 대기하던 모든 선거인이 빠짐없이 투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투표용지 반출 사태를 계기로 선관위의 부실 관리를 규탄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윤재옥 총괄선대본부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선대본부 회의에서 "투표용지를 들고 밥을 먹고 온 유권자도 있었고 이 과정에서 신분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다"며 "정말 있어서는 안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상임총괄선대위원장은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어느 때보다 공정, 엄정한 선거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소한 실수도 생겨선 안 된다. 선관위는 더 철저하고 빈틈없이 투표 관리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직무유기 등 혐의로 노태악 선관위원장, 김용빈 사무총장, 허철훈 사무차장을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이 단체는 "선관위는 관리자로서 주의 의무를 현저히 저버렸다"며 "이번 사태가 선관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선관위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인력 관리와 장비 점검 체계를 확립하는 한편 선거관리 업무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관위 관리 부실 문제가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내부적으로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외부 기관 감사 등 상호 견제를 통해 부실 관리에 따른 합당한 처분과 조치가 이뤄지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투표용지가 외부로 반출된 상황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식 밖의 모습"이라며 "부실 관리의 잘못이 드러나면 관련자들이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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