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몸 안의 미세플라스틱

2025-05-28 (수) 12:01:07 정숙희 논설위원
크게 작게
우리 머릿속에 플라스틱 스푼이 하나씩 들어있다고 한다. 최근 뉴멕시코대학의 연구진이 밝힌 충격적인 내용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인간 뇌 조직 내의 나노플라스틱 농도가 뇌 무게의 0.5%에 달하는데, 이는 플라스틱 티스푼 한 개에 해당하는 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수치는 2016년과 비교해 약 50% 증가한 것이며, 치매환자의 뇌에서는 3~5배 많은 나노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러니까 우리 몸 안에 축적되는 플라스틱의 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치매와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인 것이다.

또 다른 최근의 한 연구는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에 사용되는 프탈레이트(DEHP)가 심혈관계에 영향을 미쳐 해마다 35만6,000건 이상의 심장병 사망을 일으킨다고 보고했다. DEHP는 플라스틱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드는 성분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식품용기, 화장품, 샴푸, 세제, 의료장비 등 수많은 제품에 들어있다.

이뿐 아니라 작년에는 1리터 생수병에서 극도로 작은 미세플라스틱이 무려 24만개나 검출되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현생인류가 플라스틱 없이는 살 수 없는 ‘호모 플라스티쿠스’로 진화함에 따라 인체에 쌓여가는 플라스틱과 그 위해성에 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체에 축적되는 플라스틱은 정확히 말하면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이 아니라 나노플라스틱(nanoplastic)이다. 미세플라스틱은 크기가 5㎜ 정도여서 체내로 들어오기 전에 걸러지거나 몸 밖으로 배출될 가능성이 있지만, 머리카락 두께의 5만분의 1크기인 나노플라스틱은 너무 작아서 물과 음식을 섭취할 때 우리 몸속 어디든지 쉽게 침투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플라스틱이 인간의 고환과 태반에도 존재하며 혈액, 정액, 모유, 심지어 아기의 첫 대변에서도 검출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이런 플라스틱이 뇌에 가장 많이 축적된다는 사실이다. 나노플라스틱은 주로 소화기와 호흡기를 통해 침투하는데 다른 장기보다 뇌에 무려 30배 더 많이 쌓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이유는 나노플라스틱이 지방 친화적이고, 뇌 역시 지질을 좋아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란다. 플라스틱은 음식물의 지방과 결합해 혈류를 통해 체내로 유입된 후 지방함량이 높은 뇌 조직에 더 많이 축적되고 있다.

플라스틱 문제는 현대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환경보건 위협 중 하나다.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연간 4억 톤이 넘는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플라스틱 생산량은 2040년까지 계속 증가할 것이며 이에 따라 인체 내 플라스틱 축적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의 인체 유해성이 아직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여러 연구를 통해 플라스틱 노출과 암, 호흡기질환, 대사기능, 내분비계 장애, 심장질환과의 연관성을 발견하고 있지만 아직 더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는 미세플라스틱에 들어있는 환경호르몬의 독성은 극소량이어서 오랫동안 많이, 반복적, 지속적으로 섭취해야만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말에 안심하고 플라스틱을 마구 사용할 수 있을까? 이제 미세플라스틱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돼버렸고 피할 수가 없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딛고 사는 흙,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가 모두 플라스틱 범벅이다. 의류와 가구는 물론 주방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용품이 너무 많아서 피할 방법을 찾는 일 자체가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를 줄일 수 있을까?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병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생수병 미세플라스틱 보도가 나온 후부터 병물을 사지도 마시지도 않고 있다. 병물 사용은 사실 습관적인데, 끊고 보니 정수 물도 맛이 크게 다르지 않고, 마켓 갈 때마다 그 무거운 물 짐을 이고 지고 나르지 않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계면활성제와 프탈레이트가 많이 들어가는 샴푸를 도브(Dove) 비누로 대체한지도 꽤 됐다.

가장 어려운 것은 주방의 탈 플라스틱 노력이다. 부엌에 플라스틱 용기가 얼마나 많은지, 고무장갑과 플라스틱 랩, 지퍼 백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 스스로도 깜짝 놀랄 지경이다. 그래도 서서히 플라스틱 컨테이너를 유리, 스테인리스, 세라믹 용기로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가능하면 플라스틱에는 뜨거운 음식은 담지 않고, 전자레인지에서 덥히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햇반도 좋을 것이 없고 컵라면도 마찬가지다. 식당에서 투고해온 뜨거운 음식은 가능하면 빨리 다른 그릇에 옮기고, 일회용 그릇은 아무리 멀쩡해보여도 절대 재사용하지 않는다.

여름에 운동하러 갈 때 생수병을 얼려서 가져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 얼면 내부가 팽창하면서 미세균열이 생기는데 그 틈으로 플라스틱 성분이 녹아나오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아기 젖병을 사용할 때는 젖병에 직접 우유나 분유를 넣고 데우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하나 들어앉은 것만도 괴로운데 플라스틱 스푼까지 장착하고 있다니 정말 걱정이다. 그 스푼이 몇 년 후 밥그릇만큼 커지지 않을지 누가 알겠는가.

<정숙희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