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AE서 2,000억 달러 신규 투자
▶ 엔비디아 칩 구매 비용 포함
▶ AI칩 수출 제한 사실상 해제
▶ 중동과 AI기술 협력 잇따르자 “이게 미국 우선주의냐” 비판
▶ “중에 기술 유입 우려” 지적도
중동 순방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정부와 인공지능(AI) 파트너십 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이 그간 UAE에 적용해왔던 최첨단 AI 칩 수출 제한을 사실상 풀어준다는 게 골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UAE에 앞서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미국 기업들의 AI 칩을 대규모 공급하는 내용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경계해왔던 중동 국가들과 AI 협력을 강화한 것이다. 오일머니를 확보하고 중동과 중국의 AI 협력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트럼프 행정부 입장이지만, 미국 AI 기술이 되레 중동을 징검다리 삼아 중국으로 건너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백악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UAE로부터 2,000억 달러(약 279조 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이를 포함하면 UAE가 향후 10년간 미국에 투자하는 금액은 총 1조4,000억 달러(약 1,953조 원)에 달하게 될 것이라고 UAE 측은 확인했다.
UAE의 신규 투자액에는 이날 체결한 미국과의 AI 파트너십에 따라 앞으로 확보하게 될 엔비디아 첨단 AI 칩 구매 비용 등이 포함돼 있다. UAE는 자국 AI 기업 G42의 주도로 미국 기업들과 협력해 아부다비에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산 AI 칩이 공급되는 미국 외 지역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이를 위해 그간 UAE에 적용해 온 AI 칩 수출 제한을 크게 완화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 중동 순방을 앞둔 지난 7일 상무부는 이날부터 발표 예정이었던 AI 칩 수출 통제 규정(AI 확산 프레임워크)을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전임 행정부에서 확정된 이 규정은 미국의 무역 상대국을 위험 수준에 따라 3단계로 나누고 칩 수출 규제를 차등 적용하는 제도로, 원래대로 발효됐다면 UAE와 사우디는 미국산 AI 칩 구매량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제도를 아예 없애는 대신 개별 국가와 협상을 통해 수출량을 정하겠다는 새로운 규칙을 마련했다. 그리고 중동 국가들이 이에 따른 ‘수혜’를 가장 먼저 입게 된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이날 UAE가 엔비디아의 첨단 AI 칩을 연간 50만 개까지 수입하는 데 합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3일 사우디에서도 데이터센터 건립에 쓰일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칩 GB300 1만8,000만 장을 수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중동 지역에 무턱대고 ‘AI 칩 세례’를 내려주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중동 국가들의 투자를 얻어내기 위해 미국이 간신히 쌓아 온 AI 기술력을 너무 쉽게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미국 전·현직 정부 관계자 9명의 말을 인용해 “결과적으로 2030년대에는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가 미국이 아닌 중동에 위치할 수도 있게 됐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슬로건인 ‘미국 우선주의’를 스스로 배반했다는 비아냥도 터져나왔다.
또한 이번 협정에 미국의 주요 협력 파트너로 포함된 UAE 현지 기업 G42는 화웨이 등 중국 빅테크들과 광범위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AI 칩이 중동을 거쳐 중국으로 건너갈 것이란 관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다만 일각에선 미국이 먼저 중동에 AI 칩을 공급하는 게 낫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미국산 칩을 받지 못한 중동이 손을 내밀 곳은 중국이고, 결국 AI 기술력과 오일머니를 맞바꾸는 중국·중동 간 협력관계가 수립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공격적인 사업가 기질의 트럼프 대통령은 ‘돈 벌 기회’를 중국에 내줘선 안 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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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