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지 140주년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태어난 손주들과 함께 고국을 방문했다. 우리 고유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민속촌과 박물관 등을 방문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선교사 145명이 잠들어 있는 양화진 묘지다. 한국에 복음을 전파하다 순교한 분들의 자취를 둘러보며 일일 성지 순례길에 오른 것이다.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했던 그들이 뿌린 씨앗으로 인해 놀라운 복음의 열매가 맺히지 않았는가. 그들은 낯선 얼굴로 조선의 밀알이 되어 기적을 이루어냈다.
그 후 캐나다 한카 문화예술원 <조선에 등불을 밝혀라!> 공연을 위한 대본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선교사님들이 뿌린 헌신으로 나 역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흔쾌히 응했고, 보도자료와 기록을 찾아보았다.
19세기 일제 강점기, 조선 땅은 어둠과 가난에 묶여 희망이 없었다. 민비 시해 사건 후, 고종황제의 주치의였던 언더우드는 고종을 일본으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서양 의술을 도입해 의사와 선교사로서 조선 독립을 도왔다. 또한 언더우드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 교수로 근무하던 에비슨 박사를 조선 의료 선교사로 초청하여 제중원 원장으로 추천했다.
에비슨은 뉴욕 카네기홀에서 의료 선교에 관해 강연하며 조선에 서양식 병원과 의사 양성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 결과 1902년 스탠다드 오일의 대주주였던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가 기부한 1만 5천 달러가 밑거름이 되어 한국 최초 현대식 종합병원을 세웠다. 황제만을 위한 제중원을 옮겨 백성에까지 닿는 병원 설립이라고 하니 의미가 크다. 더불어 의전을 설립하여 1회 졸업생 일곱 한인 의사를 배출했다. 그 중 에비슨에게 장티푸스 치료받은 백정 박성춘의 아들 박서양은 의전에 입학하여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그는 한인 첫 의사로서 북간도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독립운동 주역을 감당했다.
선교사들은 약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의 편에서 어려운 이웃에게 박애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보여줬던 신앙심은 몸과 마음을 바쳐 낮은 곳으로 향하는 행동이었다. 학교와 병원은 긴밀하게 연결된 공동체였으며 복음 전도의 도구가 되었다.
에비슨의 제자 스코필드 박사는 3.1 만세 운동을 돕고 취재했다. 또한 독립선언문에 참가하여 빼앗긴 조선의 주권을 세계에 알리었다. 그 당시 산모 메리 테일러의 침대에 감추었던 독립선언서가 AP 통신원 남편 앨버트 테일러에 의해 발견되었고, 1919년 3월 뉴욕타임스에 ‘한국 독립선언서에 2천만 민족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정의와 인도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내용으로 보도되었다.
올해 뉴브론스윅 신학교 후원으로 ‘언더우드 콘서트’가 미국 뉴저지 초대교회에서 열렸다는 기사를 접했다. 우리 후세들의 세계를 향한 선교 열정을 지켜볼 수 있다. 며칠 전 딸이 파나마 선교를 다녀왔다. 찍어온 영상을 보며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불모지 정글에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강물에 연결한 파이프에 정수기를 설치해 식수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았다. 지난날 조선이 받았던 사랑의 자취와 같을 터. 지구촌 곳곳에서 어려운 자를 살피고 섬김으로써 기적을 이루어 가고 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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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숙 시인ㆍ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