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의 산골 일기] 농부가 바람났네
2025-05-12 (월) 12:00:00
김용현 평화운동가
당초 서울 갈 생각이 없었다. 아이들이 좋은 계절에 바람 쐬고 오시지 않겠냐며 부추길 때만해도 농사철이 시작됐는데 이런 때 서울 나들이라니… 바람난 앵두나무 처녀가 생각 났다 ‘물동이 호밋자루 나도 몰래 내 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 그러나 내심 오랫동안 병석에 계신 누님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어느 현처가 남편에게 보낸 긴 편지의 말미에 ‘오늘은 시간이 없어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라는 글을 썼다고 하지만 시간이 없어 글이 길어졌다는 말이나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았는데 서울을 간다는 말이나….
그런데 아뿔싸! 나이 들어 내게도 허점이 많이 생긴탓인지 아니면 무사히 다녀오라고 환송해준 친지들의 기도발이 약했던(?) 때문인지 나의 ‘와룡선생 상경기’는 초장부터 김희갑씨나 허장강씨의 실패담을 능가하는 웃픈 일화를 남기고 말았다. 낮 시간이나 저녁 시간에 비행기를 탔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온라인으로 받은 e 티켓에 출발시각이 월요일 01:00으로 표기된 것이 사달이었다.
월요일 01:00 시 출발이면 월요일 저녁이 아니라 일요일 저녁에 공항에 나가야 되는 것을 비행기 출발시간에 집에서 여유있게 짐을 싸고 있다가 서울에서 온 동생 전화에 화들짝! 그러나 비행기는이미 밤 하늘 높히 올라갔고 갓갓으로 연결된 항공사 직원은 그 다음 날 같은 시각으로 예약은 해주지만 패널티가$1,160이라고 추상같이 통고한다. 약은척 비수기를 택했다가 평상시 제 값을 내고 말았다.
떠나기 전의 씁쓸한 기분은 처제내외와 동생들,조카딸의 융숭한 환대를 받으며 말끔히 잊어버렸다. 동작동에 있는 국립현충원과 때마침 65주년 기념식이 있었던 우이동 4.19 민주묘지를 차례로 참배하며 우아하게‘ 서울 일정을 시작한다. 철쭉꽃이 무리지어 아름답게 피어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푸른 잎이 싱싱한 산하, ‘남산 위의 저소나무’ 가 풍성한 남산 둘레길을 걸으며 푸른 고국의 5월을 실감한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출렁이고 있는 5월, 누가 힘들고 약한 백성의 편을 들어 줄것인지…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 고 한 말씀이 가슴을 때린다. 어느 때보다 길고 심각한 고통의 터널을 빠져 나가고 있는 한국인의 아픔과 희망과 의지를 보게 된 것은 좋은 기회다.
첫 지방 나들이로 충청북도 제천의 산속에서 1박을 한뒤 경상북도 영주와 풍기 안동을 다녀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널리 알려진 하회마을 보다는 중앙의 벼슬을 마다하고 산속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해 만대의 정신적 지주가 된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과 선비문화의 산실이었던 소수서원에 들러 난세에 선비의 길은 무엇이고 급변하는 지구촌에서 한민족의 살길은 어떤 것인지 묵상하게 된다.
이어서 여수와 순천, 충청남도 서산과 태안등지를 찾아가서는 고국의 어촌과 산골의 풍광을 만나보려 한다. 그동안 ‘김용현의 산골일기’ 를 애독해 주신 미주한국일보 독자들과는 여기서 인사를 드린다.
<
김용현 평화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