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하루] 쿠바 메이데이 행사의 특별한 의미
2025-05-02 (금) 12:00:00
최윤필 / 한국일보 기자
‘메이데이(노동절)’는 쿠바 공화국 최대 국경일이자, 쿠바 혁명정신을 북돋우는 세계인의 축제일이다. 1959년 1월 혁명을 완수한 인권변호사 출신 혁명군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총리 신분이던 1961년 5월 1일 메이데이 기념식 연설에서 비로소 자신이 마르크스-레닌주의자임을 공식 천명했다.
“미국의 케네디(당시 대통령)가 사회주의를 싫어한다면 우리는 제국주의를 싫어한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날 쿠바는 다당제 선거를 금지함으로써 일당 체제를 선언했다.
미국과 쿠바가 혁명 직후부터 서로 으르렁댄 건 아니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정부는 쿠바 혁명정부의 좌파 성향을 우려하면서도 당장엔 쿠바에 투자된 미국 자본과 이권을 더 염려했다. 미국은 쿠바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바티스타 독재권력을 무너뜨린 민주주의 혁명이길 바랐다.
물론 그 기대는 카스트로의 토지개혁과 정유공장 국유화 등 일련의 조치로 여지없이 무너졌다. 카스트로는 미국 수입품 관세를 인상하고 소련과의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아이젠하워는 쿠바 설탕수입 쿼터를 삭감하고 미국 내 쿠바 자산 동결과 함께 사실상 거의 전면적인 대쿠바 무역금수조치를 단행했고, 케네디는 61년 4월 피그스만 침공을 감행했다. 카스트로의 메이데이 선언은 미국에겐 냉전 선전포고였지만, 쿠바로선 15세기 이래 이어진 스페인-미국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 선언이었다.
1989년 냉전 종식으로 구소련 지원마저 끊기면서 이후 쿠바는 현대사 최장 기간 미국과 유엔의 초고강도 경제제재에 갇힌 고립의 섬으로 버텼다.
전 세계 진보-좌파 청년 및 노동-인권 운동가들이 메이데이에 맞춰 쿠바를 방문, 다양한 행사에 동참하며 쿠바의 노동자 및 시민들을 응원했다. 그들은 스페인 내전 국제여단의 이름을 빌려 스스로를 ‘우정의 여단’ ‘벤세레모스 여단(Venceremos Brigade)’ 등으로 명명했다. 벤세레모스는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쯤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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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 한국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