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프란치스코, 안녕!

2025-05-02 (금) 12:00:00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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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지 이분에게는 “프란치스코 교황님!”하고 깍듯하게 부르지 않고 그냥 이름만 불러도 용서해 주실 것같다.

2013년 즉위 후 가난하고 어려운 분들 옆에 서 계시다가 4월21일 선종하여 평생 살아온 검소한 삶처럼 소박한 목관을 택한 분, 권위 넘치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묘지가 아니라 로마 시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안식처로 하신 분, 관 위에는 ‘프란치스쿠스’(라틴어) 이름만 새겨져 있고 무덤 위 벽면에는 생전에 늘 목에 거셨던 철제 십자가 복제품이 걸렸다.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회계사였고 어머니는 문학과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이민자 가정으로 최초의 남미, 예수회 교황인지라 이민의 삶을 사는 한인들에게 더 친근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한국에 머물던 지난 2월초, 경기도 천주교 용인공원 묘원으로 김수환 추기경이 계신 성직자 묘소를 찾아간 일이 생각난다. 김수환 추기경과는 퀸즈한인천주교회 설립자인 정욱진(토마스) 신부와의 인연으로 만나뵌 적이 있다.

정 토마스 신부는 소신학교와 일본 상지대학 졸업후 1947년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 주례로 사제서품을 받았고 64년 도미, 73년 4월 스무명 남짓 교인으로 시작하여 미동부지역 최대 한인성당으로 키우신 분이다. 김수환 추기경과는 상지대학 선후배 관계이다.

1992년 10월 은퇴후 더글라스톤 사제신부 숙소에 계신 정 신부 인터뷰를 갔다가 마침 그곳을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훌륭한 분이니 일대기를 잘 써드리라‘고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씀하셨는데 신문 연재가 끝난 몇 년 후 1997년 7월12일 정 신부가 선종했다. 2009년 2월16일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천주교 용인공원에는 다소 인연이 있는 박완서 작가 묘소도 있다. 두 분을 찾아가 뵐 생각으로 약도를 보니 분당 야탑역에서 묘원까지 총 소요시간이 1시간 정도, 야탑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죽전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내리니 완전 산골 속 마을로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서 10분 이상 찬바람에 머플러를 여며가며 걸어서 묘원에 도착했다. 김수환 스테파노 기념성당 옆 건물에 사무실이 있었다.

“성당 왼쪽 도로로 죽 올라가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한참 올라가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면 성직자 묘소가 있어요. 그곳에 김수환 추기경 묘소가 있고 박완서 작가 묘소 가려면 다시 내려와서 바로 앞에 보이는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해요. 그 언덕에서 다시 내려와 왼쪽으로 죽 내려와서 찾아야 해요.”

이곳 용인공원 묘원에는 총 2만7,000여 기가 묻혀있으며 알파벳 ABCEF 등으로 구역이 정해진 이정표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산 전체가 묘역으로 언덕이 매우 가파랐다. 가톨릭 의대에 시신을 기증한 이들의 몸을 화장해서 봉안한 참사랑 묘역, 낙태아의 넋을 기리는 공간을 지나 한참 올라갔다.

혼자서 꿋꿋하게 걸어올라 드디어 성직자 묘소를 찾았다. 추기경, 주교, 서울대교구 신부의 묘 천여 기가 있고 중앙 앞부분에 커다란 십자가 아래 기도 공간, 오른쪽으로 성모마리아상이 있다. 그 아래에 왼쪽부터 한국인 최초의 노기남 대주교, 김수환 추기경, 김옥균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네 분의 묘소가 있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시편 23편)는 묘비명을 읽으며 들고간 꽃을 김수환 추기경(1922~2009년, 스테파노) 묘소 앞에 놓았다.

“김수환 추기경님, 저 아시죠? 박완서 작가님 만나시면 제가 찾아왔었다고 말해 주세요. 더이상은 힘이 부쳐서 못가겠어요. ”하고 기도했다. 생전의 박완서 작가는 ‘김수환 추기경이 있는 곳에 함께 묻히게 되어 저세상의 큰 백’이라고 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김수환 추기경, 성직자 묘소의 신부, 평신도 모두가 한평 남짓한 묘를 차지할 뿐, 모두에게 죽음의 자리는 공평하다. 이 세상 떠나는 날, 우리가 가지고 갈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당신과 나, 너무 욕심부리는 것 아닐까요?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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