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국일보 4월 10일자에 실린 ‘한인 정체성 뿌리 교육의 결실과 선천적 복수국적법의 아이러니’ 특별기고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한국의 한 국회의원은 “정말 재외 동포 자녀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4월 초에 텍사스에서 외손녀가 태어나 산후조리를 해주고 있는 친구는 기사를 접한 후 “아비를 이어 딸까지!”라며 기막혀했다.
그의 사위는 부모가 시민권을 취득하기 전 하와이로 이민 와서 태어나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되었고, 딸은 미국 유학 후 사위와 결혼하여 영주권 상태에서 출산을 했다. 갓 태어난 지 열흘도 채 안 된 아기는 모국의 축복 대신 ‘선천적 복수국적법’이라는 족쇄를 차게 된 것이다. 아기 탄생 소식에 찬물을 끼얹는 기사를 보낸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마음이 무거웠다.
로마에 계신 한 수녀님 역시 시애틀에 사는 조카에게 기사를 보내자, “이런 법이 있느냐”며 깜짝 놀라워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대학생 큰아들과 고등학생 작은아들을 둔 조카는 걱정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한인 학부모들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매년 이맘 때면 단기 해외 유학 프로그램 신청 기간이 다가오는데다, 한국 대학 교환학생프로그램을 희망하는 학생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해당 기사가 나가자 학부모들은 혼란스러워하며 연신 질문을 쏟아냈다.
시민권자인 학생의 경우, 3개월 이내의 여름방학 어학연수는 한국 비자가 필요 없지만, 한 학기 또는 1년간 체류하는 프로그램은 비자를 받아야 한다. 학생의 신분만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원정 출산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천적 복수국적법 때문에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 학생 가운데 출생 시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한국 국적자였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되어 미국 여권이 아닌 한국 여권으로만 한국에 입국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국적이탈을 하지 못한 남성의 경우, 병역기피자로 체포될까봐 두려워 한국을 못가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시민권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들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LA 총영사관에 문의하였더니 “부모가 미국 국적자일 때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는 한국 국적이 없으며, 한국에 출생신고할 의무 또한 없다. 다만, 한국 국적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녀가 미국-한국 간 여행 시 부모의 미국 시민권 증서 사본을 지참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아들의 한국 방문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채, 왜 자녀 본인에 관한 서류도 아닌 부모의 시민권 증서 사본을 <선천적 복수국적법> 때문에 챙겨야 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더욱이 선천적 복수국적법의 적용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한국의 법적 절차에 따라 한국에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하고, 부모가 국적상실 신고를 하고, 자녀가 국적 이탈 신고를 하는 과정은 재외 동포 부모와 자녀는 물론 영사관 직원들에게까지 불필요한 행정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자국에서는 주민센터에서 쉽게 민원업무가 처리되는 것에 반해, 미국에서는 이민 생활과 학업으로 바쁜 동포 부모와 자녀가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에 위치한 영사관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법적 절차조차 밟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며 족쇄를 찬 채 살아가는 안타까운 사례도 주변에서 목격하게 된다.
이번 조기대선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국회의원 시절 원정 출산자를 막겠다며 입안한 포퓰리즘적 성격의 선천적 복수국적법이 수많은 재외 동포 자녀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왜 침묵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맺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다. 홍 후보는 재외동포 자녀들에게 큰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법 제정을 주도했으니, 이제라도 “18세가 되는 해에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 자동 말소되도록” 하는 법 개정에 앞장서 책임져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입법자들은 국민 정서에 매몰되어 쉬쉬하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법 개정을 통해 재외 동포 자녀들이 선택의 자유를 누리며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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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장 페닌슐라 한인학부모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