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웹사이트에서 책 목록을 검색하던 중 이미륵의 작품인 <압록강은 흐른다>를 발견했다. 내가 사는 카운티 도서관 전체에 일곱 권이나 소장되어 있었다. 반가웠고 울컥했다. 나는 이미 전자책을 읽고 있었지만 종이책이 보고 싶어 도서관을 찾았다.
이 작품은 독일어로 쓰인 자전적 소설이며, 1946년 5월에 출간되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독일에 도착한 직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미륵의 본명은 이의경이며, 189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박하면서도 간결하고 친근한 문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책 속에 담담하게 풀어낸다. 아들을 갖지 못한 어머니가 미륵불에게 기도해 얻은 아들이라 하여, 집에서는 그를 미륵이라 불렀다고 한다. 천석꾼 집안에서 자란 그는 아버지에게 한학과 한시를 배웠다. 어린 시절, 사촌들과 한집에 살며 질투로 인해 자주 다투기도 했다. 아버지는 조카들보다 아들에게 더 엄격했으며, 매를 맞을 때 아픈 것보다도 아이들의 동정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벌을 받는 것이 더욱 수치스러웠다고 회상하는 대목에서는 어린 그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시골 고향에 봄이 오는 모습, 여름 저녁의 평안함에 대한 묘사는 매우 서정적이다. 무언극과 탈춤, 섣달그믐날의 집안 풍경, 새해 인사와 놀이 등 어린 시절의 기억을 따뜻하게 풀어놓았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신문학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학교에 다닐 것을 권유한다. 마음에 내키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뜻을 따른 그는 한문학과는 너무나 다른 서양 문화를 배우며, 세상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음을 느낀다.
아버지와 함께 옥계천에 소풍 다녀온 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날의 일과 아버지와의 대화를 세세히 서술하며, ‘달이 아주 밝게 빛났고, 복사꽃 향기가 풍겼으며 나는 아버지의 벗이 되어 술을 마시며 앉아 있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도, 그의 심정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 오히려 그의 아픈 마음이 더욱 절절히 전해진다.
일본에 강제 합병된 후, 세상은 변하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어머니는 미륵에게 불안한 도시를 떠나 시골집에 머물 것을 권유한다. 그곳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일상, 보리와 밀의 수확, 바닷가에서의 낚시, 가을 추수, 새끼 꼬기, 베 짜기 등 시골의 사계를 서술한 장면은 그대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의학전문학교 재학 중에 3.1운동에 참여한 그는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받는다. 어머니의 권유로 21살인 그는 상하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배에 오르게 된다. 긴 여행 끝에 마르세유에 도착했고, 마침내 그는 독일 뷔르츠부르크에 발을 디딘다. 어느 겨울날, 그는 흩날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행복해한다. 그리고 고향에서 온 첫 편지를 받는다. 어머니가 가을에 돌아가셨다는. 이 장면을 끝으로 그의 작품은 마무리 된다. 독일에서 큰 호평을 받은 이 소설은 국내에서는 1959년 전혜린의 번역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이미륵은 생전에 자신이 쓴 문학 작품 원고 대부분을 태워버려서 독일 도착 후의 생활에 대해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그 시대를 살아간 그의 고민과 아픔, 그리고 낯선 나라에서 겪은 또 다른 고통을 문학인으로서 녹여내어 인간 내면의 순수성을 세밀하게 담아냈다. 그의 작품은 인종도, 국경도 넘어서 우리 모두에게 깊은 공감과 감동을 전한다. 책이 출간된 후, 독일의 한 잡지사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그 해 독일어로 쓰인 가장 훌륭한 책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아주 오래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다.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우며, 어린 시절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우리 할머니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타국에서 독일어로 쓴 한국 이야기를, 오늘 나는 미국에 앉아서 한국어로 읽으며 감동한다. 문학은 아무리 번역되어도 본래 작가의 사상을 담고 있기에,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그 당시 독일 독자들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한다.
외로움과 질병과 지독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그가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독일에 있는 이미륵의 기념 동판에는 생전에 그가 자주 하던 말인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가시동산이 장미동산이 되리라.’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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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