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은둔과 침묵’

2025-04-29 (화) 08:07:26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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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가 홀로 조용한 방에 머물 수 없다는 단 한 가지 사실에서 비롯된다.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은 내 영혼 속에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중에서)

은둔과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삶은 경박스럽다. 정체성과 가치관의 중심을 잃는다. 인간의 깊은 언행심사는 은둔과 침묵 속에서 오래 다듬어지고 정화될 때, 거기서 진실한 힘이 나온다. 그 위에 인간 존엄의 휘광이 삶을 에워싼다.

은둔과 침묵은 세상의 뜬구름 같은 소란을 잠재운다. 인간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걷어낸다. 파스칼이 ‘홀로 조용한 방에 앉아 은둔하며 침묵하는 법’을 배웠을 때, 허무와 위선으로 가득 찬 자신을 무너트리고 돌연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 후 ‘팡세‘의 재료가 되는 ‘메모리알(Memorial)을 썼다.

악성(樂聖) 베토벤의 천재성은 청력의 상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베토벤의 청력은 27살부터 점점 약해졌다. 44살이 되자 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베토벤은 이 후부터 심장병, 당뇨병, 시력약화, 췌장장애의 고통에 시달렸다. 완전한 청력상실이 확인되었을 때 베토벤은 망연자실했다. 베토벤은 수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48세가 되자 베토벤은 정서적 안정을 찾았다. 원활하고 정확한 소통을 위해 베토벤은 대화노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평생 사용한 대화노트는 200권이 넘는다. 대화노트의 사용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대화노트가 베토벤과 대화 상대를 오고갈 때마다 노트 여백에 창의적 생각과 악상이 깨알처럼 기록되었다.

청력을 잃고 나서 베토벤은 지휘자의 길을 접고 작곡에만 전념했다. 이때부터 베토벤은 인간내면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며 존재론적 문제를 붙잡고 신음했다. 베토벤이 작곡한 곡 중 신앙의 영감이 넘치는 곡이 거의 만년에 쓰여 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청력상실 이후 베토벤은 주로 집 안에 은둔했다. 집 안에 큰 서재를 만들어놓고 책 읽기에 몰입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위시하여 실러, 호메로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칸트, 헤르더를 읽었다.

베토벤은 특별히 루터파 신학자들의 신앙도서를 깊이 섭렵했다. 이 시기에 베토벤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으로 거듭났다. 1824년 5월 7일 금요일에 초연된 베토벤 제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위시한 ‘장엄미사’, ‘올리브 산의 그리스도’ 등은 모두 베토벤이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집 안에서 독서하며 은둔하던 중에 작곡된 것이다.

선지자 엘리야는 우리에게 은둔과 침묵이 부족할 때 위기를 돌파하는 힘을 잃어버린다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 엘리야는 강박한 아합 왕과의 영적 대립으로 극심하게 지쳤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엘리야에게 임했다. 엘리야는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임을 깨달았다.

각성된 엘리야는 한적한 로뎀 나무 아래로 피정(避靜)했다. 며칠 후 엘리야는 호렙산 기슭의 굴로 거처를 옮겼다. 엘리야는 거기서 오래 침묵하고 운둔했다. 침묵과 은둔의 날이 깊어가자 엘리야는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연합했다. 엘리야는 영적으로 높이 도약했고 승리자가 되었다.

당신은 리더인가. 세상의 소란을 피해 외딴 곳으로 나가라. 무질서하게 개방되었던 세상의 커튼을 잠간 닫아 내리라. 내면의 영혼이 활동할 수 있는 삶의 여백과 행간을 만들라. 성 안토니우스는 말했다. “나무가 불이 붙으려면 먼저 건조해져야 한다. 은둔과 침묵은 영혼을 건조시키는 작업이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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