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왕’이 되고픈 나르시시스트

2025-04-02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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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뛰어난 통솔력과 지도력을 발휘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사실 전쟁 중 그의 휘하 장교들은 워싱턴을 미국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길 원했다. 이들은 워싱턴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군 전체의 뜻”이라며 미국의 새로운 왕 조지 1세가 되어줄 것을 간청했다. 당시는 군주제가 당연시되던 시대. 하지만 워싱턴은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만장일치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워싱턴은 첫 임기를 잘 수행하고 한 번 더 대통령 직을 맡는다. 이때도 워싱턴은 연임을 원하지 않았다. 어쨌든 연임이 끝나자 그는 대통령 자리를 내려놓고 자신의 사저가 있는 마운트 버넌으로 귀향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종신 대통령으로 있어주기를 간청했지만 워싱턴은 미련 없이 사인으로 돌아갔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두 번의 대통령 임기를 끝으로 대통령 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이후 대통령들도 두 번까지만 임기를 하고 물러난다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이 전통이 깨지게 된다.


루스벨트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네 번 선출돼 12년간 재임했다. 그는 1936년 재선에 성공하고 후기 뉴딜정책을 추진하던 중 1939년 2차 세계대전 상황과 맞닥뜨린다. 그러자 1940년 민주당은 다시 그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초대 대통령부터 임기를 두 번 마치면 물러나는 것이 관례였으나,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 임기 제한 조항이 없었다. 전쟁 상황에서 강한 지도력을 바란 국민의 지지와 연합군의 승리가 더해지며 그는 1944년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돼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이 됐다.

루스벨트 4선 이후 대통령 임기에 대한 명확한 헌법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4년 임기를 한 번만 연임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1951년 제정된 수정헌법 제22조이다. 수정헌법 제22조는 한 사람이 두 번 넘게 미국 대통령 직에 선출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으며, 타인의 대통령 직을 2년 이상 대행한 사람 역시 한 번 넘게 선출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정헌법 제22조쯤은 별게 아닌 듯싶다. 후보 시절부터 헌법상 금지된 세 번째 대통령 임기 도전 여지를 열어두는 발언을 반복해 왔던 그는 30일 또 한 번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농담이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두 번 이상 대통령 선출 금지’ 조항은 연임 여부와 무관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한 번 건너 뛰어 두 번째로 대통령 직을 수행중인 트럼프가 3선에 도전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트럼프가 무슨 ‘꼼수’를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헌법을 개정하려면 연방의회 상하원 3분의2 찬성과 50개주 4분의3 이상의 비준이 있어야 하는 만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트럼프는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한 번 더 출마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표를 던진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역시 못 말리는 자기애로 충만한 나르시시스트다운 인식이다.

18세기의 대통령 워싱턴은 원하기만 하면 왕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런데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 트럼프는 거꾸로 전근대적인 왕의 자리를 꿈꾸고 있다. 대통령 3선 허용 개헌을 하자는 결의안을 발의하거나 트럼프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자고 주장하는 등 아첨을 일삼는 충성파들의 발호가 트럼프의 이런 망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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