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물가 안정에 일조했던 저렴한 공산품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따른 물가 상승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0일 미국에서 수십년간 안정세였던 상품 가격이 오르고 있으며 트럼프 관세가 추가적인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가가 오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2011년 말∼2019년 말 사이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내 근원 상품 물가(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 제외)는 오히려 1.7% 떨어졌다.
경제 전반의 디플레이션은 악재이지만, CPI에서 20%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 근원 상품 등 특정 영역의 물가 하락은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이 된다.
이는 일반적으로 기술·생산성 향상 덕분이며,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편입 이후 값싼 중국 공산품의 미국 시장 유입도 한몫했다.
같은 기간 주거·보건·교육을 비롯한 근원 서비스 물가가 연 2.7% 오르면서, 둘을 합친 근원 인플레이션은 연 2%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상황은 바뀌었다. 코로나19 여파 속에 상품 물가는 2023년 여름 고점을 찍고 12개월간 내림세를 그렸지만 근원 상품 물가는 지난해 9월 다시 월 0.1% 정도씩 오르기 시작했다는 게 WSJ 설명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이번 달 기준금리 동결 후 기자회견에서 "평균적으로 0%에 가까웠던 상품 인플레이션 지표가 높은 상황"이라면서 관세 및 다른 요인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봤다.
리서치업체 TS롬바드의 스티븐 블리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상품 물가 지표를 보면 2010년대와 같은 디플레이션 충격이 없을 것임을 알 수 있다"면서 올해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치인 2%보다 높은 3% 정도 될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이 주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지표를 보면 근원 인플레이션은 2.6∼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WSJ은 수입 물가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수입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20% 추가 관세를,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국가별 상호관세와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를 줄줄이 예고한 상태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2월 2.8%였던 근원 PCE 상승률이 연내 3% 정도로 올라갈 것으로 봤다.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연은)과 애틀랜타 연은, 듀크대 등이 공동으로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 400명을 조사해 지난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멕시코·캐나다·중국에서 물품을 수입하지 않는 기업들은 올해 물가 상승률을 2.9%로 봤다.
이들 국가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5.1%로 높게 잡았다.
JP모건의 브루스 카스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적인 상품 가격 하락 요인이 없다면 연준이 물가 목표 달성을 위해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수요를 더 억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