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 등 시민권 증빙서류 소지해야만 투표 허용
▶ 우편투표, 선거일 이전 소인 찍혀도 나중에 도착하면 무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에 내린 선거제 개편 행정명령은 대통령 권한으로 선거 시스템을 장악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시도라고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30일 분석했다.
WP는 이 행정명령이 민간 메신저 시그널 채팅방을 통한 군사작전 유출 논란에 덮이는 바람에 마땅히 받아야 할 주목을 덜 받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행정명령이 입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방적 지시에 의해 국정을 운영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행정명령의 법적 근거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다른 행정명령들과 마찬가지로 혼란과 변화가 초래될 수 있으며 그 후에야 소송전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정치학 교수인 찰스 스튜어트 3세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선거 행정에 대한 연방정부의 권한을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수준으로 키우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방향은 전혀 다르지만, 직전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 민주당이 추진했던 선거개혁 법안 역시 선거 행정에 대한 연방정부의 권한을 키우려는 시도였다.
이 법안은 2021년 연방하원에서는 통과됐으나 상원에서는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넘지 못했다.
당시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 법안이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거센 반대 의사를 밝혔으나,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는 공개적 반발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거 분석가는 WP에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제 개편 행정명령을 내린 목적이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을 찍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투표율을 낮추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선거 부정이 횡행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거짓 주장을 펴 왔다.
그는 2016년 대선 총투표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뒤진 데 대해 불법 이민자 수백만 명이 불법으로 투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2020년 대선에서 낙선하자 "선거를 도둑맞았다"며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지지자들을 선동했으며, 이는 2021년 1월 6일의 연방의회 의사당 폭동으로 이어졌다.
트럼프의 선거제 개편 행정명령에는 선거일이 지난 시점에 각 주에 도착한 표들의 개표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투표일까지 접수되지 않은 모든 투표지는 무효로 처리해야 하며, 연방 법무부가 이를 단속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로는 선거일 혹은 그 전 날짜의 소인이 찍혀 있다면 선거일이 지난 후 도착한 우편투표도 당연히 개표 대상에 포함된다.
또 트럼프 행정명령의 문구에 따르면 미국 여러 주가 실시 중인 조기투표제도 금지될 소지가 있다.
이런 변화는 대체로 젊은 세대, 비(非)백인, 소외계층 등 민주당 지지 성향이 높은 집단의 투표율을 낮추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명령에는 또 여권 등 미국 시민권자임을 입증하는 서류를 소지한 사람만 연방 선거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하고 미국 선거지원위원회(EAC)의 유권자 등록 서식에 시민권 증빙을 추가하라고 지시하는 내용도 담겼다.
EAC는 의회가 공화당 소속 인사 2명과 민주당 소속 인사 2명으로 구성한 독립기구로,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리려면 위원 4명 중 3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의회 입법 없이 EAC에 이런 지시를 내리는 것이 합법인지는 확실치 않다.
일론 머스크가 사실상 지휘하는 정부효율부(DOGE)가 국토안보부(DHS)의 협조를 받아 각 주의 유권자 명부를 검토하기 위한 소환장을 발부받을 수 있고, 이번 명령을 준수하지 않는 주에는 재정 지원이 삭감될 수 있다는 내용도 명령에 포함됐다.
명령에 따르면 법무부, DHS, 국무부, 사회보장국(SSA) 등 연방정부 기관들은 정보 제공 등에 협조해야 한다.
WP는 트럼프의 통치 전략이 "벽에 닥치는 대로 던져 보고 벽에 달라붙는 게 뭔지 보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를 막으려는 소송이 법원에서 진행되더라도 판결이 나오려면 오래 걸릴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입맛에 맞도록 시스템을 "구부릴"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