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 넘는 지난 세월 동안 온 지구가 팬데믹으로 어두운 긴 터널에서 힘들었고 코로나19가 수백만 인류의 귀한 생명을 앗아갔을 때 우리에게 언제쯤 안전하고 자유롭게 공기를 숨쉴 수 있는 세상이 올까 생각했다. 그래도 다시금 평온한 일상과 2025년 환희의 봄을 주심에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한 봄날이다.
감사한 마음 가득 안고 남편 폴 김 교수의 메시앙과 베토벤 음반 전곡을 영국의 대영 국립도서관 (The British Library Historical Collection) 역사 자료로 영구 보존한다는 영광스러운 소식과 함께 여러 일정을 잡고 영국으로 향했다. 마침 주일날 아침 런던 도착이라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성당에서 예배를 보기로 하고 호텔에 짐을 맡기고 런던 특유의 냄새와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그리고 빨간 2층 버스를 타고 내려 수상관저 다우닝가를 지나 대성당에 도착하여 신분증 제시를 위해 가방을 열었더니 가방 안에 또 하나의 작은 핸드백이 통째로 사라졌다. 소매치기를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 이중 가방에 넣은 것인데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그 가방 안에는 남편의 여권, 신용카드, 운전면허증, 현금, 신분증까지 모든 게 들어 있었다. 텅 빈 가방 안을 보고 망연자실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더니 웨스트민스터 경호경찰이 경찰서(Metropolitan Police)에 가서 정식 신고를 하라고 한다.
간신이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경찰서로 걸어갔더니 온라인으로 신고를 하라고 안내하면서 요즘 런던에서 가장 많은 소매치기범들이 영국 방문객들을 위협한다고 한다. 소매치기범들은 보통은 현금만 빼고 잡히지 않으려고 다른 신분증은 쓰레기통에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혹시 우리 것도 제발 현금만 챙기고 버렸기를 간절히 바라며 경찰서를 나와 우리가 걸었던 주위 쓰레기통들을 미친 듯이 뒤졌지만 없었다. 급히 호텔로 가서 이메일을 열었더니 은행과 카드사에서 벌써 우리 카드로 수천달러를 막 사용하고 있다고 당신이 사용하는 것이 맞냐며 확인을 요청한다.
무서웠던 것은 우리가 은행과 통화 중에도 인출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가장 먼저 은행 계좌와 신용카드도 정지시키고 비밀번호도 모두 바꾸어야 한다. 이 모든 상황이 잠시 현실이 아닌 악몽이었으면 했다. 경찰에서도 알려줬지만 아마 소매치기범들이 우리를 호텔에서부터 따라왔을 가능성이 크고 범죄 수법이 날로 교묘해져서 요즘은 범죄 대상을 정해서 몇 시간 전부터 계획하고 따라붙는다고 했다.
날고뛰는 소매치기 범죄를 피하려면 귀중품은 몸속 코트 속에 품고 다니는 것이 그래도 조금은 안전하다고 한다. 우리같이 많은 것을 소지하고 다니는 중년들이나 노년들의 경우 가방 안의 귀중품을 노리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최신형 폰을 노리기도 한다.
여권은 분실하면 곧바로 대사관에 연락해 인터뷰 날짜와 시간을 받아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도 간신히 긴급여권(Emergency Passport)을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미국대사관으로 갔더니 많은 미국인들이 여기저기서 당신도, 당신도(You too, you too?) 소매치기 당했냐고 서로 묻는다. 나만 멍청했다고 자책하고 있었는데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도 여러 번 연착해 새벽 2시가 넘어 간신히 뉴욕에 도착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번 우리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들으신 어머님께서 좋은 소식에 대해 “너희들이 혼신을 다해 노력했던 지난날에 대한 아름다운 보상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는다”라고 하시며 ”우리 속담에 ‘호사다마’란 말이 있다.
“좋은 일에는 흔히 나쁜 일이 끼어든다 라는 뜻”이라고 위로해 주셨다. 나의 소매치기당한 경험을 이렇게 글로 옮기는 것도 고통이 동반되지만 그래도 독자 여러분들은 가능하면 이런 끔찍한 경험을 피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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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춘희/성악가·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