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술 다시보기] 베퇴유의 해빙

2025-03-28 (금) 12:00:00 신상철 /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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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겨울은 모네에게 혹독했다. 궁핍한 시절을 함께 견뎌왔던 아내 카미유가 그해 9월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따뜻하고 인내심이 강했던 그녀는 모네가 빈곤과 절망으로 가득 찬 세월을 견디게 해준 인생의 동반자였다. 아내를 잃은 슬픔과 함께 모네는 가혹할 만큼 냉담했던 화단의 평가를 감내해야 했다. 파리의 미술 시장에서 그의 실험적인 인상주의 화풍은 주목받지 못했고 어렵게 판매한 작품을 환불해줘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결국 홀로 어린 두 아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모네는 동료들에게 돈을 빌리는 편지를 써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 시기 절망의 끝에 선 그는 ‘베퇴유의 해빙’ 연작을 제작했다.

1879년 12월에서 1880년 1월 사이 파리 인근 지역에는 많은 눈과 서리가 내렸다. 급격한 기온 하강으로 센강은 완전히 얼어붙었고 강줄기를 따라 이뤄지던 주변 지역 간의 인적 왕래는 중단됐다. 1880년작 베퇴유의 해빙에는 적막한 겨울 풍경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최소한의 색채 사용과 느슨한 붓놀림으로 생성된 흐릿한 형상들은 겨울 풍경의 황량함과 우울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이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모네의 밝고 생동감 있는 풍경화와는 매우 상이하다. 이 작품에 묘사된 척박한 자연의 모습은 당시 모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물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모네는 기온이 상승하면서 센강의 얼음이 조각조각 갈라져 하류로 흘러가는 광경을 재현하고자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존할 수 없으며 우리가 지각하는 매 순간들이 사물의 본질이 변화하는 시작점이 된다고 믿었다. 빛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세상의 변화를 포착하려 했던 그의 인상주의 미학은 이러한 점에서 매우 혁신적인 미술 운동으로 평가받는다.

<신상철 /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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