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2일 오전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야산(성묘객 실화 추정)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동쪽으로 번져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위협하고 있다. 신라시대 의상이 창립한 1,000년 고찰 고운사는 잿더미가 되고 불길이 지나간 과수원, 농장, 산림은 폐허가 되어버렸다. 산골마을은 온통 타버려 사상자가 속출했다.
의성 산불 소식이 들리자 친구들로부터 의성에 선산이 있지않느냐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대구의 친척 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산불이 바람 방향인 동쪽으로 가면서 안계와 교촌면은 초토화가 되었지만 부모님 선산이 있는 곳은 남쪽이라 괜찮다고 했다.
시골에 사는 친척 동생은 멀리서 불이 보이긴 하나 내일 비가 내린다니 큰비가 내리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봄이라 나무가 메마르고 산에 골이 깊다 보니 불이 말 그대로 날아다닌다고도 했다.
의성에는 기차역은 물론 시원한 고속도로도, 변변한 고층아파트도 없다. 그래서 서울에서 성묘를 가려면 시간도, 길도 어렵다. 누군가 차로 데려다주지 않는 한 대구까지 기차를 타고 간 다음, 한 시간 거리를 어떻게 가야할 지 모른다.
작년 9월 초, 벌초를 하러 가면서 보았던 그 울창한 숲들이 새까맣게 타버린 곳을 본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낙후되고 척박한 땅에서 생존 방식을 잊어버린 이재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까.
안동 하회마을도 산불 위협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7년 전 하회마을 북촌댁에 머물며 고택 체험을 한 적이 있다. 유서 깊은 한옥에서의 평온함과 편안함, 대청마루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아직 느껴진다. 그곳에는 서애 유성룡이 ‘징비록’을 집필한 옥연정사가 있고 하회마을에서 가까운 병산서원은 당시 배롱나무의 핑크색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누각 건물인 만대루는 올라가지 못하게 할 정도로 낡았지만 보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목조건물이 품위 있었다. 이러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화재로 위험하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다면 목조로 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 5개 고궁의 화재대비책은 얼마나 견고할까 궁금하다.
지난 겨울 창덕궁과 후원의 수많은 전각을 오고 가면서 관람객 외에 순찰 업무자를 볼 수 없었다. 그날 날씨가 바람이 불고 매섭긴 했다. 불이 난다면 속수무책일 것 같아서 유심히 살펴보니 곳곳에 작은 소화기가 숨겨져 있고 CCTV가 있긴 했다.
경복궁의 경회루 2층에 올라갔을 때도 해설사가 나무 마루 사이가 넓어 핸드폰이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문화재인 마루를 뜯고 핸드폰을 절대로 꺼낼 수 없다고 했는데 조선시대 목조건물의 백미인 경회루의 화재 방지책은 무엇일까를 또 살펴보았다.
보통 궁궐 귀마루에 잡상(雜像: 대당사부, 저팔계, 삼산보살 등 서유기와 토신들)을 올려놓는데 경회루에 잡상이 11개로 가장 많다. 나무로 된 궁궐은 화재에 취약하여 잡상이 화재를 예방하고 나쁜 기운을 막아줄 거라는 조선인들의 믿음이었다.
2008년 2월 숭례문이 훨훨 불타던 충격을 기억할 것이다. 이후 5대 궁궐과 여주 영릉 등 안전관리 기능이 강화되었다. 궁궐별로 소방전문 요원이 배치되고 종합경비 CCTV가 24시간 감시한다는데 그 넓은 구중궁궐을 어찌 다 지켜볼 것인가.
산불이 빈번한 계절이 되면 화재 위기 경보 단계를 올리고 산불 감시 추가인력을 투입하여 성묘객에게 화재 안전교육, 농민들의 논밭두렁 불법 소각 단속, 순찰 업무 강화, 그 외에도 산불을 낸 자에게 무거운 징역과 벌금을 내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지 않은가. 정계는 정적 싸움으로 하루 해가 뜨고 지고 수많은 국민들은 지난 12월 초부터 길거리에 나가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 결사적으로 집회를 하고 있다. 그러니 산불이 난들 인명도, 문화재도 지킬 사람이 없다. 그것이 문제다. 천재지변이 아닌 화재는 인재(人災)이기 십상이다. 껍데기만 남기 전에 어서 빨리 다들 제자리로 돌아와 우리 생명을,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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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