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 신호등에 걸렸다고 짜증낼 일만도 아니다. 분명 기다리면 파란불은 다시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가는 길마다 파란불이 켜지기를 바라겠는가.-
이 글은 홍미숙님의 “마중 나온 행복”중에 한 구절인데 오래 전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해 읽었다. 일상의 일이지만 생각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우리는 이따금 빨간불 앞에서 유혹을 받는다.
좌우를 돌아보다가 인적이 없다 싶으면 그냥 지나가고픈 마음이 들 때가 없지 않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모두가 요행을 추구하는 사행심이 그런 치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빨간불에서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가다가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다. 벌점은 그렇다 해도 3년을 보험료 인상이라는 굴레를 써야한다. 벌점도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된다. 더 위험한 경우는 술을 마시고 빨간불을 지나가다가 걸리거나 사고를 내면 인생의 치명상을 입게 된다. 술을 마시는 자체가 이미 빨간불에 지나가려는 준비행동이다.
인생은 언제나 작은 일이 문제다. 큰일이라고 언제나 크게 시작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큰일에서 걸리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작고 사소한 빨간불,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서있는 신호등을 무시하고 지나가다가 가로수 밑에 조용히 서서 눈을 반짝이는 폴리스에게 발각이 되면 삶의 한 축을 구겨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내 아내는 경찰관과 같다. 아내가 나와 함께 차를 탈 때는 매의 눈으로 변한다. 당장은 시끄럽고 언짢지만 아내는 항상 옆자리에서 눈을 부릅뜨고 남편의 운전을 감시하고 통행로의 상황을 예의 주시한다.
그리고 경각심을 부추긴다. “여기는 25마일! 25마일! 지금 몇 마일로 달리나요?” “자칫 빨간불에 지나갈 뻔 했습니다. 왜 이렇게 운전을 하지요?” 지금 소개한 아내의 경고 메시지는 실제보다 훨씬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이보다 강도가 훨씬 높다. 이런 아내의 감시는 확실히 효과가 있다.
튀르키예에서는 신호등에 걸린 위반자를 차에서 내려 걷게 하고 경찰이 옆에서 따라가며 계속 큰소리로 훈계하고 꾸짖는다는 것이다. 음주운전 적발 시에는 집에서 22마일쯤 떨어진 곳에 내려놓고 걸어가게 하는데 경찰이 차를 타고 감시한다.
물론 벌금은 따로 내고 벌점도 가산한다. 그러므로 모든 아내들은 옆자리에 앉아서 자거나 졸지 말고 경찰을 대신해 남편을 향해 신호등 교육을 줄기차게 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사실 요즘 뉴욕의 교통 통제는 대단하다. 거리마다 촘촘히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는 카메라가 무서울 정도다. 항상 신경을 쓰지 않고는 딱지의 그물을 피하기 어렵다. 술집 앞에는 경찰이 진을 치고 있으니 음주운전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교통 단속을 위한 빨간 신호등이 인생이 살아가는 삶의 길목에서도 간단없이 설치되어 있음으로 신호등을 정신 차리고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에서 연기자로 평생을 살아온 노배우 한 분이 뒤늦게 조연으로 출연한 작품 하나가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 대박이 나서 정말 쨍하고 해 뜰 날을 인생 후반기에 보는가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몇 년 전 정말 우연찮게 성 추문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빨간 신호등에서 지나갔다는 것이다. 늙은 연기자 편으로 본다면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인가 싶지만 지나갔다는 것으로 판명이 났으니 할 말이 없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상황을 안타까워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로 그분은 뒤늦게 페널티를 지불했다. 이런 일은 비단 이분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신호등은 도처에 깔려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쓰지 말라는 속언이 진리임을 깨닫고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빨간 신호등은 계속 켜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 오래지 않아 파란 불로 바뀐다는 사실을 믿어야한다. 조금만 견디면, 그 짧은 순간을 참기만하면 “아, 내가 이겨냈구나.” 마음 편히 달릴 수 있는 길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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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