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환호·야유·퇴장… 극단 분열 확인한 트럼프 의회연설

2025-03-06 (목) 12:00:00
크게 작게

▶ 공화 의원들 종교집회 방불케하는 환호

▶ 민주 의원들은 철저 외면·연설 도중 퇴장도
▶ 지지층에 집중… 통합의 메시지는 실종

환호·야유·퇴장… 극단 분열 확인한 트럼프 의회연설

지난 4일 도널드 트럼프의 연방의회 국정연설 도중 데이브 민(맨 윗줄 오른쪽)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항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

워싱턴 DC의 연방 의사당에서 지난 4일 밤(이하 동부시간)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은 미국에서 좌우로 첨예하게 갈라진 간극을 더 벌리고 있는 ‘트럼프식 분열의 정치’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회의장 한쪽의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 연설 내내 종교집회를 방불케 하는 열기로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다른 한쪽의 민주당 의원들은 시종 야유를 하거나, ‘거짓’(false) 등이 적힌 둥근 손팻말을 들어 올리며 침묵으로 저항의 뜻을 표했고, 한인 데이브 민 연방하원의원 등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말을 참을 수 없다며 연설 도중 퇴장하기도 했다.

초청된 외빈 중 범죄 피해자 유족 등이 소개될 때 민주당 의원들이 공감의 박수를 보내긴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관련 발언 도중엔 양당 의원들이 함께 박수친 순간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미합중국’이라는 국명이 무색할 정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9시13분께 공화당 의원들과 방청객들의 열화같은 환영 속에 연설 장소인 하원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지난 2021년 1월 6일엔 대선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의 난입으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승리한 당시 대선 결과를 인증하는 상하원 합동 회의장은 공포의 공기가 지배하는 장소였는데, 바로 그 장소에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4년여만에 개선장군처럼 입장한 것이었다.

공화당 의원들이 기립 박수와 ‘USA’ 구호로 그를 맞이하는 동안 민주당 의원들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선언을 시작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자찬이 이어지는 동안 민주당 의원들의 야유는 점점 강도를 더해갔고 결국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질서 유지에 나섬에 따라 연설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의장의 경고를 무시한 채 계속 큰 소리로 항의하던 민주당 소속 앨 그린 연방하원의원(텍사스)은 결국 의사당 경위들에 의해 퇴장당했다.

이후 민주당 의원들은 고성 항의나 야유보다는 침묵 속에 ‘거짓’, ‘머스크가 도둑질한다’, ‘메디케이드를 구하자’ 등의 문구가 적힌 검은 손팻말을 들어 올리는 조용한 항의로 시위 방식을 바꿨다.

약 100분간 이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연설에서 양당 지지자들을 아우르는 통합의 메시지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작년 대선 유세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만큼 트럼프 대통령은 오롯이 지지 세력을 향한 메시지에 집중했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인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잇달아 거명하며 인플레이션을 포함한 그의 실정을 비판했고, 대선 유세 때 민주당 인사들을 비판할 때 썼던 ‘극단적 좌파 미치광이’ 등의 표현을 그대로 쓰기도 했다. 이는 통합을 강조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2017년 집권 1기 첫 의회 연설과는 완연히 다른 톤이었다.

이날 청중석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신흥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누차 트럼프의 호명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머스크가 정부효율부를 이끌며 정부 구조조정 및 인력감축에서 거둔 성과를 칭찬하자, 티셔츠 차림의 평소와 달리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머스크는 자리에서 일어서 청중들의 환호에 거수경례로 화답했다.

대통령 유고시 권력 승계 서열 1, 2위인 J.D. 밴스 부통령과 마이크 존슨 연방하원의장도 트럼프 대통령 뒤에 자리 잡은 채 카메라에 시종 포착됐지만 현재 트럼프의 신망을 가장 많이 받는 ‘최고 실세’는 머스크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연설이 끝나자 공화당 의원들은 기립한 채 손을 치켜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7월 야외 연설도중 총격 암살 시도를 극적으로 모면한 뒤 외치며 그의 대표적인 구호가 된 “파이트(Fight), 파이트, 파이트”를 외쳤고 민주당 의원들은 신속히 퇴장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연설은 기록으로 소요 시간이 남아 있는 1964년 이래 역대 미국 대통령의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 중 최장 기록이라고 AP통신이 전했다. 종전 기록은 2000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연두교서) 때 기록된 1시간28분49초였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