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재욱의 워싱턴 촌뜨기

2025-03-04 (화) 08:09:03 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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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칩에 개구리알, 치아씨

정재욱의 워싱턴 촌뜨기
어제 비 내리더니 오늘은 화창. 이러면 봄이다. 아직 모른다고? 우수 지나 경칩 바라보면 봄이 오는 것 맞지 뭐.
개구리가 놀라 깬다는 경칩이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어릴 적 이맘 때쯤이면 등산길 초입에서 팔던 개구리알 도롱뇽 알이다. 양푼재기에 담긴 걸 코펠 찌그러진 알미늄 그릇에 퍼줬던가. 애들은 가라, 그런 보양식이었는지 내 차례까지 돌아온 적은 없다.

참 별걸 다 먹었구나. 참 먹을 것도 지지리 없었구나. 먹을 게 없어서 먹은 것은 창피해야 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권장해서 지켜나가야 할 미풍양속도 아닐진대 어쨌든 나는 치아 알, 치아 씨(chia seed)로 그 시절을 떠올린다.

치아, 이제는 좀 알려졌다지만 널리 보편화된 식품은 아니다. 치아라는 말은 들어서들 안다. 내가 미국에 온 90년대 초만 해도 치아는 먹는 게 아니었다. 어른들 장난감이었다. 도자기로 만든 동물인형에 물을 부으면 파랗게 잔디처럼 싹이 나서 머리카락도 되고 털도 되는, 그런 치아 펫(chia pet)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기를 누렸다.


그런 별난 물건을 먹는 음식으로 알게 된 건 십오륙 년 정도 됐다. 콜레스테롤이 문제인 내게 다이어트를 강조하면서 의사가 권한 게 치아였다. 당시 유행하던 아마씨(flax seed)보다 낫다면서 자기도 먹는다고 했다.

의사가 권하니 먹기는 하는데 솔직히 건강에 몹시 좋은지 아닌지는 내 어떻게 알겠는가. 다만 남들 잘 모르는 걸 아는 체 하고 잘난 체 가르쳐주는 행세 떨기에는 몹시 유용하니 정신건강에는 확실히 도움이 됐겠다. 그 사소한 정보를 열거하면 이렇다.

- 역사: 옥수수에 이어 센트럴 아메리카의 주요 곡물이었다. 과테말라, 멕시코 남부가 원산지로 특히 아즈텍 부족의 전사들에겐 비상전투식량이었다. 툭툭 입에 털어넣기만 하면 된다. 일설에는 탁월한 효능으로 일종의 제사 공물로 대접받았는데 현지 문화를 지우려는 정복자 스페인에 의해 재배가 금지되고 그 과정에서 점차 곡물로서의 지위를 잃어왔다고 한다.

- 재배: 사루비아처럼 생긴 꽃에서 맺는 씨가 아주 작다. 겨자씨는 못 봐서 모르겠고 좁쌀보다도 작다. 색은 ‘salt & pepper’ 검은색과 흰색이 섞여 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파라과이에서 많이 키우고 오스트레일리아, 중국에서도 재배하고 있다.
- 성분: 오메가3와 항산화 어쩌고 그런 좋은 것들 함유량이 무지 높다는데 내가 어찌 알겠냐.

- 먹는법: 중남미에서는 물에 타서 여름철 청량음료 삼아 마신다. 물을 부으면 젤처럼 된다. 그 모양이 도롱뇽 알 같다니까. 맛은 없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무미, 맹물처럼 그냥 맛이 없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마시지 않아 잘 모른다. 그쪽 전통음료로 우리네 미숫가루 같은 오르차타(horchata)는 각종 형태로 남아있는데 치아 음료는 그렇지 못하다. 참 중미에서는 치아를 창(chang)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개구리알 방식 대신 시리얼 탄 우유나 스무디, 요거트, 샐러드에 뿌려먹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
구매처: 이전에는 홀푸드 같은 고급 오개닉 수퍼마켓에서만 팔았다. 그게 비싸서 인터넷을 뒤져 2파운드 포장 단위로 오더해서 선물용으로 쓰곤 했다. 지금은 코스코 등지에서도 보인다.

음, 누가 보면 치아 장사하는 줄 알겠다. 이국의 문물에 전통, 신비, 기적 그런 설탕물 발라서 포장하는 건강식품 광고를 혐오한다. 반짝 유행으로 떴다가 사라지는 게 어디 한둘인가. 그저 겨울이 춥고 길었고 그래서 봄이 어서 왔으면 하는 마음에 싱거운 소리를 늘어놓았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물을 많이 머금어서 그런지 배가 든든하게 오래 가더라는 장점 하나만은 확실하다. 다이어트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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