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현장] 독립지사 후손들이 일깨우는 역사

2025-03-04 (화) 12:00:00 황의경 사회부 기자
크게 작게
지난 3월1일은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삼창을 하며 시작된 3.1운동이 일어난 지 106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기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나눌 때이다. 특히 3.1절 특집기사를 준비하며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초기 미주 한인들의 역사와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초기 이민사회에서 한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김호 선생의 외손자 안성주씨, 독립운동사에서 첫 의열 투쟁을 펼친 전명운 의사의 사위 표한규씨, 그리고 현순 선생의 직계손인 그랜트 현(한국명 현순일)씨가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이사로 합류했다. 100년도 훨씬 전에 이역만리 미국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 던졌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이사장 클라라 원)에 합류하며 그 정신을 계승하려는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1909년 창립된 대한인국민회는 해외 한인들의 독립 의지를 결집시킨 최고 기관이자, 대한제국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기까지 준정부 역할을 수행한 단체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잇고자 설립된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은 대한인국민회관(LA 사적지 548 역사물)을 관리·보존하며, 애국선열들의 유물을 보존하는 데 힘쓰고 있다. 또한 한인 차세대를 위한 정체성·역사 뿌리교육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민 역사 세미나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역사 계승에 앞장서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합류는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본인이 속한 가족사와 대한민국의 역사가 맞닿아 있는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후세들에게 살아있는 역사로써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인터뷰 중 오간 많은 이야기 속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다. 안성주씨는 “외할아버지인 김호 선생이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갔을 때 어머니는 겨우 2살이었고, 외삼촌은 외할머니 뱃속에 있을 때였다”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가족과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목숨이 보장되지 않은 길을 떠났을 김호 선생을 생각하니 그 결단과 희생이 더욱 깊게 와 닿았다. 특히 ‘우리보다 나’가 중요시되는 요즘 세상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내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공헌이 오늘날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두 후손들은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표한규씨는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조차 일부 주요 독립운동가들을 제외하고는 역사 교육이 미흡한 상황”이라며 “한인 차세대들에게 독립운동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그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교육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나라를 위해 감히 상상도 못할 용기와 결단력을 행동으로 보인 이들도 집에서는 평범한 아빠이자 할아버지였다. 안성주씨는 “우리가 미국에 오자마자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잘해주셨다”고 말했다. 표한규씨도 부인 마가릿 전 여사의 말을 빌려 “장인어른이 가끔 아내와 처남을 데리고 나와 맛있는 음식을 사먹이고 흐뭇하게 바라보셨다고 한다”며 “20대 초반 작은 체구의 전명운 의사는 미국 땅에서 친일한 백인을 직접 처단하려는 강단이 있었지만 집에서는 한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생각은 저마다 다르고, 강요할 수 없기에 정체성과 뿌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각기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평범했던 독립유공자들이 흘린 피와 땀, 그리고 그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얻어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개인의 삶을 포기하며 지켜낸 것들을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황의경 사회부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