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복 차림에 태극기를 백 팩에 꽂고 있는, 대부분이 60대로 보이는 승객들, 전철 안의 분위기는 벌써부터 격앙돼 있었다. 광화문 역이 폐쇄됐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승객 대다수는 시청 앞에서 하차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출입구 계단.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보였다. 사람들에 끼여, 밀리다시피 지상으로 올라온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머리칼이 솟는 느낌이었다. 왕복 모든 차선을 가득 메운 시위군중. 모두가 아스팔트에서 무릎을 꿇고 침묵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광화문으로 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전후좌우 사람들로 겹쳐서 빽빽이 둘러싸여 발걸음 떼기조차 어려워서였다. 한 번 헛짚으면 자칫 대형 압사사고라도 날 판 이라고 할까. 그렇게 경복궁 앞까지 가는 과정에서 목격된 것은 출렁이는 태극기 물결이었다.‘
2019년 10월 3일 조국사태와 관련해 광화문 시위 장소를 찾아 갔을 때의 기억이다.
2025년 3월 1일. 그 때 그 장소, 광화문에서 또 다시 군중시위 광경이 펼쳐졌다. 유튜브를 통해 목도된 시위 양상은 6년 전과 사뭇 달라 보인다.
그 끝이 안 보이는 탄핵반대 시위대. 수십만인가, 수백만인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인지 가늠조차 안 된다. 광화문뿐이 아니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에도 수십만의 시민이 몰려들었다. 그 때도 엄청난 인파가 몰렸었다. 그렇지만 눈짐작으로 비교해도 6년 전 보다 최소 서너 배는 넘어 보인다.
그 때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펼친 전국 40여개 대학교 학생들, 그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시위 참가 젊은 세대가 눈에 띄게 많다는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10대, 20대, 30대, 그리고 60대, 70대, 80대, 심지어 90대에 이르기까지 전세대가 아우러져 ‘피플 파워(People Power)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연출한 게 3.1절 국민대행진이 아닐까.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 광경, 광경을 목도하면서.
언제부터였는지 ‘광장’은 진보를 참칭하는 좌파의 영토란 인식이었다. ‘대학생’도 그랬다. 반정부, 반체제운동의 선봉역할을 맡아 온 것이 대학생이고 2030으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였다.
‘2025년 을사(乙巳)년 3.1절 대학생, 젊은 세대가 마침내 광장을 점령했다.’ 좌파가 광장을 접수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날 국민대행진에서 드러난 양상은 종전과 정반대다. 탄핵반대에, 대한민국수호의 기치를 높이 든 대학생, 자유 민주주의 지지 청년들이 노년 세대의 박수갈채 속에 광장을 점령한 것이다.
대반전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탄핵에서 광란의 내란몰이로 이어지고 있는 현 대한민국의 상황을 단순한 정치적 대립을 넘어 체제 전쟁, 이념 전쟁의 한 가운데 있는 것으로 진단한 탄핵반대 대학생 시국선언문에도 녹아 있다.
‘부정선거 의혹과 선관위의 조직적 부패,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의 편향적 판결과 사법 카르텔 형성, 의도적 예산삭감과 탄핵남발로 인한 국정마비, 국가기밀 유출과 간첩세력의 활동 강화,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언론과 반국가 조직의 결탁.’
이 모든 것은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시도란 질타와 함께 대한민국 지키기 투쟁에 나설 것을 시국선언문은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왜 오늘의 젊은 세대는 체제전쟁을 외치고 있나.
K팝, K드라마, 심지어 K푸드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Korea Wave(한류)의 주역 세대’가 오늘날 한국의 2030세대다.
이 청년세대에게 대한민국은 자랑, 그 자체다. 일부 좌파 4050세대들이 떠드는 것 같이 ‘결코 태어나서는 안 되는 나라’가 아니다.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견지하고 있다. 이 ‘Korea Wave 주역세대’에게 있어서 동북공정을 앞세워 ‘한국의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빼앗고 음해하려드는 중국공산당’은 혐오 대상이다. 그 연장에서 공산 전체주의를 생래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들이 청년 세대다.
이런 그들에게 87체제와 함께 대한민국의 요소요소를 장악한 4050 기득권 좌파 세대는 반국가세력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다. 종북 주사파의 숙주로 전락한 문재인과 이재명의 민주당. 민노총, 선관위, 우리 법 연구회 중심의 좌파 사법 카르텔. 그리고 대한민국 곳곳에 파고들어 뿌리내리고 있는 친중세력은 척결대상으로 비쳐지고 있다.
‘북-중-러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를 고집 한다’는 내용의 대통령 1차 탄핵 소추 문이 발표되자 청년세대는 바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외쳤다. ‘정치, 문화, 미디어 등 모든 영역을 파고드는 공산 전체주의 중국의 하이브리드 공격’에 맞서 싸우겠다는 선언과 함께 그 싸움은 단순한 윤석열 대통령 지키기를 넘어선 체제전쟁이 될 것이라고.
‘이 2030세대가 2025년 3월 1일 6.25와 4.19를 경험한 노년층과 민주화의 광장에서 만났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하나. ‘전 세대를 망라한 진정한 의미의 자유민주 공화주의 시민혁명의 불길이 마침내 당겨졌다’- 그런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 불길은 급속히 확산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재등장과 함께 중국 공산당타도의 소리가 한 층 높아진 워싱턴에서 강력한 화력지원이 쏟아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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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