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에 안 통했던 젤렌스키 안보보장 요구…전략부족 노출

2025-02-28 (금) 02: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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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 평화협정 파기 사례 들며 설득 시도…트럼프 ‘보상 우선’ 입장에 맥 못춰

트럼프에 안 통했던 젤렌스키 안보보장 요구…전략부족 노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우)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좌)[로이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28일 워싱턴에서 만나 종전 협상의 판세를 바꿔보려 했지만 결국 얼굴만 붉힌 채 회담장을 일찍 떠났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했지만 조기에 백악관을 빠져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낮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나는 젤렌스키가 평화를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본다"면서 "그는 백악관에서 미국에 대해 무례하게 행동했다"라고 말했다. 두 정상은 어떤 합의에도 서명하지 않은 채 회담을 마쳤다. 이번 회담은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과 연계된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광물 협정에 최종 합의를 도출할 목적으로 마련됐으나 협상의 진행은 예상과 달리 순탄치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그동안 미국이 지원한 대가로 우크라이나 광물 개발 수익을 나누자고 요구했고, 우크라이나 측은 미국의 안보 지원이 지속된다면 공동 광물 사업을 벌일 의향이 있다고 밝히면서 협상은 추진됐다.

그러나 협상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은 크게 달랐다.

지난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양자관계 회복과 신속한 종전 논의 필요성에 교감한 트럼프 대통령은 광물 협정을 그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 지원에 대한 '비용 청구서'로 여겼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광물 협정은 향후 종전 협상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판이었다. 그는 미국에 광물 개발 수익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향후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미국이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려는 구상이었다.

이런 시각차가 전혀 조율되지 않은 듯 두 정상은 회담 시작부터 취재진을 앞에 두고 설전을 벌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여러 차례 미국의 안보 보장 약속을 언급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미국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2주 만에 졌을 것"이라며 "당신은 감사해야 한다"라고 직격했다. 광물 협정을 미수금 협상처럼 여기는 시각이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이자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면서 2014년 러시아가 자국 크림반도를 병합한 뒤 체결된 협정을 깨고 2022년 전면전을 일으킨 점을 지적했다.


미국이 전쟁 중단만을 목적으로 러시아와 협상하고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확약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또 전쟁을 일으킬 것이란 취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광물 협정이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주는 첫 문서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설득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우리가 없으면 당신에게는 (전쟁을 끝낼) 아무 카드도 없다. 협상하거나 아니면 우리는 빠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서방 지원에 의존해온 우크라이나의 취약점을 파고들며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 러시아의 신뢰성을 문제 삼고 미국의 안보 보장을 약속받으려던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략이 그간의 지원을 감사히 여기고 보상부터 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몇 마디에 맥을 못 춘 양상이다.

설령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 탈환을 포기하더라도 서방국의 안보 보장은 반드시 지켜야 할 종전 조건이라는 게 우크라이나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에서 설득은커녕 냉담한 미국의 입장만 확인한 우크라이나는 대미 외교 전략의 한계를 노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맹 가치보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일 수단을 찾지 못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의 광물 개발을 미국 기업과 추진할 수 있다는 의향을 드러내는 등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를 더 잘 읽어내고 있다는 지적마저 제기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유럽의 도움을 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달 2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유럽 10여개국 정상들을 초청해 여는 비공식 회의에 참석해 서방의 결속과 지원을 요청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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