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 앞서 “무례하다·고마워해라” 면박…美부통령도 가세
▶ 굽히지 않은 젤렌스키, 안전 보장 요구하며 “여러 번 감사 표했다”
▶ 트럼프, 회담 일방 취소하고 “준비되면 와라”…젤렌스키 ‘빈손’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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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회담하고 있다. 2025.2.28[로이터]
28일 파국으로 끝난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정상회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예측 불가능한 성격과 친러시아 성향을 고려하더라도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일방적인 우크라이나 종전 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방송 카메라를 포함한 언론 앞에서 거칠게 면박했으며, 여기에 J.D. 밴스 미국 부통령까지 가세해 2대 1 난타전이 벌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압박에 굴하지 않고 러시아와 휴전하려면 재차 침공을 막을 확실한 안보 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결국 빈손으로 백악관에서 내쫓긴 처지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열린 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무례하다", "고마워할줄 모른다" 등의 비난을 쏟아내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배제한 채 협상 중인 종전 구상에 협력하라고 거듭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메라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고, 젤렌스키 대통령도 지지 않고 자기 입장을 반복해서 주장했다.
통상 정상회담에서는 서로 이견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고 외교적 수사로 부드럽게 표현하는 게 관행이지만 이날 회담은 정반대였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주요국 정상 모두 보복을 두려워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찬사를 쏟아내고 갈등을 빚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이처럼 화낸 게 오랜만이라고 보도했다.
정상회담은 앞부분만 언론에 공개하고 이후 오찬을 겸한 비공개 회담과 광물 협정 체결식, 공동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지만, 공개 부분이 파행으로 끝나면서 나머지 일정은 취소됐다.
CNN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핵심 참모들과 집무실에서 회의한 뒤 후속 회담을 취소하기로 결정했으며,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과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우크라이나 측에 메시지를 전하라고 지시했다.
미측은 오찬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담은 카트들이 백악관 복도에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측에 떠나라고 했고, 우크라이나 측은 대화를 더 원한다며 항의했지만, 미측은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1시16분께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젤렌스키는 평화를 위한 준비가 됐을 때 다시 올 수 있다"라고 적었고, 이후 오후 1시40분께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는 모습이 포착됐다.
50여분간 진행된 회담이 시작부터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문이 영광이라고 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는 우리 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담이 40여분 진행된 시점에서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의 질문에 "푸틴에 대한 그(젤렌스키)의 혐오 때문에 내가 협상을 타결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말했고, 배석한 J.D. 밴스 미국 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를 위해 러시아와 외교를 하는 것이라고 옹호했다.
그러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불법으로 병합한 이후 체결된 민스크 평화협정을 위반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사실을 지적하고서 "J.D. 무슨 외교를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고 이에 밴스 부통령이 발끈했다.
밴스 부통령은 "집무실에 와서 미국 언론 앞에서 이걸 따지는 게 무례하다"면서 "당신은 이 분쟁을 끝내려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밴스 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상황을 직접 봐달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구에 그런 방문은 "선전용 관광"(propaganda tour)이라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위협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여러분은 좋은 바다가 있고 지금 (위험을) 느끼지 못하지만, 미래에 느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평소 미국과 유럽 사이에 대서양이 있어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가 뭘 느낄지 우리한테 지시하지 말라. 당신은 그런 지시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은 (손에 쥔) 카드가 없다"고 말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는 카드놀이를 하는 게 아니다"라고 응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당신은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당신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갖고 도박하고 있고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을 도박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이 하는 짓은 이 나라에 매우 무례하다"라고 비판했다.
밴스 대통령도 가세해 "고맙다고 말한 적이 있느냐"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작년 9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전쟁에 필요한 포탄 생산공장이 있는 도시이자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을 방문한 것을 문제 삼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에 대해 지금까지, 그리고 오늘 백악관에서도 여러 번 감사를 표했다고 해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화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회담에 배석한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우크라이나대사가 두 정상의 충돌에 좌절한 듯 오른손으로 이마를 잡은 모습이 CNN에 포착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군사 장비가 없었다면 이 전쟁은 2주 만에 끝났을 것"이라고 지적했고, 젤렌스키 대통령도 지지 않고 "3일 만에 끝났을 것이다. 난 푸틴한테 3일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양측이 설전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할 기회를 달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거듭 무시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난 휴전을 원치 않는다. 난 휴전을 원치 않는다"라고 비꼬기까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당신이 합의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빠질 것이다. 우리가 빠지면 당신은 (러시아와) 싸워서 해결해야 할 것이며 그건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고성 지르다 끝난 이날 회담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할 것을 예상한 듯 취재진을 집무실에서 퇴장시키면서 "이건 대단한 TV(쇼)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회담이 파국으로 끝난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군복 차림을 놓고도 미묘한 기류가 감지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입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맞으면서 "오늘 완전히 차려입었네"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왜 대통령 집무실에서 양복을 입고 있지 않냐'는 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서 "난 이 전쟁이 끝난 뒤에 복장을 갖추겠다"라고 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