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고 장철우 목사님을 그리며

2025-02-26 (수) 07:52:10 이용해/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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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갔습니다. 사랑하는 그는 갔습니다. 버뮤다의 푸른 파도를 헤치고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얼마전 카리비안 크루즈를 가신다고 했는데⋯ 우리도 같히 갔으면 좋았으련만⋯. 내년에는 꼭 같이 가자고 하시던 말씀만 허공에 뿌린채 왜 약속을 어기신건가요. 장목사님은 많은 목사님처럼 근엄한 몸짓과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친구와 같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곤 했습니다.

저와는 남다른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국이 가장 어려웠을 1950년대 장목사님은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산 1 번지에 사셨고 나는 목사님이 떠나신 후 였지만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산 4 번지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친근감이 더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만난지 얼마 안되어 친구가 되었고 자주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냉면도 먹으면서 우정은 두터워졌습니다. 또 목사님과 아시는 분들이 저도 아는 분이 많았는데 감리교 신학교의 박대선 박사, 한승호 목사, 백기준 목사, 방순자 목사, 윤길상 목사님 등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작은 체구에 불덩어리로 가득 찬 듯이 부지런하고 정열적이였습니다. 미스터 션샤인 황기환 애국지사의 묘를 찾아다니며 뉴욕일대의 공원 묘지를 찾아다녔고 찾아낸 후 한국 정부와 접촉을 하여 대전 헌충원에 안치를 하는 큰 일도 하셨습니다.

한국에 여러번 다녀오셨는데 한국 체류중 YMCA나 감리교 신학교 기숙사에 머무셨고 몇천원짜리 식사를 하시고 오셨다고 합니다. 그는 유관순 열사의 역사를 더 규명하고자 천안, 공주, 이화여고, 정동교회, 서대문 형무소 그리고 도서관을 찾아 다니며 조사를 했고 유관순 열사 추모 시집도 출판을 했습니다.

그리고 시집 이름도 ‘영원히 타오르는 별이 되어’ 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또 애국가의 작곡가 작사자를 찾아 연구를 하고 안익태 선생이 쓰시던 피아노를 찾아 뉴욕 한인교회에 안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행적을 찾아 연구를 하셨습니다. 나를 만나면 안익태 선생의 책과 안창호 선생의 책을 주면서 읽으라고 주시곤 했습니다.

그는 남을 돕는데도 열정적이었습니다. 주일날 차편이 없어 교회를 못나가는 사람들을 아파트마다 돌면서 태우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뉴욕에 오는 신학생과 음악인들을 공항에서부터 호텔로, 연주장으로 새벽이나 밤이나 교통을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도 툭하면 약속이 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프지도 않고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셨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우리보다 먼저 하늘 나라에 가셨으니 우리가 간다고 하면 부지런히 나오셔서 마중을 해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목사님 그리고 그리운 친구여 이 가슴에 있는 말 한마디를 끝끝내 하지 못하였구려. 사랑하는 장철우 목사님이여 그립습니다

<이용해/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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