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美 없어도 될까…유럽, 급변한 안보 현실에 대응 골머리

2025-02-21 (금) 01:58:19
크게 작게

▶ 나토 집단방위 믿음 ‘흔들’…전술핵무기·병력 부족 지적

▶ “방위 지출 GDP 4∼5% 수준 돼야…개혁 통한 재정 뒷받침 필요”

美 없어도 될까…유럽, 급변한 안보 현실에 대응 골머리

나토 본부에 걸린 미국 국기[로이터]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전통적인 대서양 동맹을 무시하는 듯한 행보를 이어가면서 유럽이 자력으로 안보를 보장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전후 질서의 근간이 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집단 방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유럽은 미국 없는 안보가 가능할지 대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 "美 빠지면 전술 핵무기부터 병력·무기까지 부족"


당장은 유럽의 자력 안보란 요원한 것으로 평가된다.

당면한 우크라이나 전후 안보 보장만 하더라도 유럽은 평화유지군 파병을 포함한 자력 방위 방안을 내놓고 있으나 '미국의 지원'이 전제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20일(현지시간) "미국이 이미 밝혔듯 미군 파병은 없겠지만 억지력을 확실히 하려면 여전히 미국 측의 전반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으로서 가장 큰 전략적 이슈는 미국 핵우산, 특히 유럽에는 부족한 전술 핵무기의 미래라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짚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약 515개 핵탄두를 보유했으나 대부분 핵전력 사다리의 꼭대기에 있는 전략적 무기다. 전술 핵무기는 특정 지역을, 전략 핵탄두는 도시 전체를 파괴하는 규모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유럽을 방어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나토의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전술 핵무기라는 중요한 억지력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전후 방위 투자를 소홀히 한 데 따른 병력과 탄약 등 무기 부족도 계속 지적된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최근 유럽 국방장관들에게 미국이 유럽에서 병력 일부를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언급했다고 한다.

유럽 각지의 육·해·공군 기지에 주둔하는 미군은 약 9만명이다. 특히 미국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조 바이든 행정부가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으로 보낸 미군 2만명을 뺀다면 유럽 안보에는 당장 비상이 걸리게 된다.

한 유럽 외교 장·차관급 인사는 FT에 "그들(미국)이 필수적 동맹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며 "그들 없이는 어떤 형태의 복잡한 군사 작전도 꾸릴 수 없고 단순 임무 유지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론적으로는 200만명이라는 유럽의 군 규모는 자력 방어에 충분하지만, 실제로 배치 가능한 병력만 따진다면 그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평가된다.

싱크탱크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의 벤 배리 선임연구원은 "군의 능력과 준비 태세 간 격차가 크다"며 "탄약과 군수품, 예비 부품 재고량이 충분한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 '너무 느렸다' 유럽 자성론, 방위증강 논의↑

유럽도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 안보를 전적으로 책임질 생각이 없다는 현실을 잘 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트럼프 1기를 거치며 수년간 제기됐는데도 유럽의 대응은 완전히 느렸다는 자성도 크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20일 더프리프레스 기고에서 "미국의 새로운 태도에 유럽의 적절한 대응을 아직 보지 못했다"며 "유럽은 선택권이 없다.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2∼5년 내 또다시 발트해 국가나 폴란드, 다른 어디든 러시아의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FT는 각국 방위비 증액, 군 수송기나 공중급유기 부족과 같은 방공 시스템상 구멍 메우기 등 방위 증강과 재무장 논의가 최근 며칠 사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전했다.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은 20일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가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로이터 통신에 "유럽이 스스로 방위에 대한 헌신을 강화하기 위한 방위 지출을 늘리는 것이 필수"라며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으로 방위비를 늘린다는 영국 정부의 계획을 재확인했다.

방위 증강은 현재 규모나 속도로는 부족한 만큼 대대적인 증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이 '낡은' 세계관에서 벗어나 유럽 사회와 경제 시스템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면 유럽이 자체적으로 중량 수송, 병참, 정찰 능력을 보유해야 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 대륙 보호를 위해 핵무기를 어떻게 사용할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방위비 지출 수준도 냉전 시대의 정상 수준이었던 GDP의 4∼5%까지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새로운 목표에 필요한 추가 지출은 연간 3천억 유로(약 450조원)"라며 재무장 비용을 위해 재정 개혁과 규제 완화를 통한 성장 촉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