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날이라고 하면 손꼽아 가슴조이며 밤샘을 하고 기다리는 희망의 날이 있는가 하면, 듣고 말하고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날을 가슴속 깊이 숨겨둬야만 하는 구슬픈 날도 있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 아닌가 한다.
누구나 바쁜 삶 이라는 핑계로 자신을 지극정성 키워주신 부모님 생각조차 잊은채 평생 생존하시리라는 망각속에 어느날 갑자기 다가선 후회는 지울수 없는 쇠사슬이다. 필자 역시 그런 상황의 죄인이다. 어영부영 외국생활 속에서 어느덧 9학년 1반을 맞이하면서 그간 마음속 깊이 쌓인 “어머님 그림자” 와 함께 70년전 등진 부산항을 돌이켜본다.
6.25 직후 폐허가 된 잿더미속에서 허덕이는 조국에 조부님과 부모님 그리고 단 하나뿐인 어린 여동생을 남겨놓고 희망찬 청운이란 대학유학길에 올라 금년 70년 세월을 맞이하면서 피치 못할 역경속에서 어머님 한번 제대로 못모신 한이 늘 가슴 한구석에 천근만근 무겁게 매달려 있다.
교육자이신 나의 어머님은 6.25 동란으로 인해 “모든 국민이 허덕이는 이 판국에 어찌 우리 식구가 감히 ‘은수저’ 로 호식할수가 있겠느냐” 고 하시며 “청운의 뜻을 품고 유학길에 오른만큼 훌륭한 인재가 되어 돌아와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라”는 사명으로 전가족의 ‘은수저’를 팔아 학비로 마련해주신 숭고한 어머님이다.
그 지극하신 어머니 정성에 단 한번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 이 불초소생을 늘 책망하고 책망하며 살아올 뿐이다. 그러나 그 은수저가 새겨준 어머님의 엄한 교훈은 물론이고 그 소중한 가치관이 나의 일생을 정의로 인도해준 소신의 철학이 된 것이다.
즉, 국가, 사회 그리고 나의 울타리 가족이란 인생철학을 주신 고귀한 어머님의 별세를 지켜본지 긴 세월이 흘러 갔건만 나의 “생일날”이 되면 우체통을 살며시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며 슬쩍 손을넣어 살펴보는 손에 혹시라도 “내 엄마의 생일카드” 가 잡히지 않을까 하는 가냘픈 심정에 숨막힌다.
아무리 나의 가족과 친지들이 이 세상에 없는 귀한 ‘금 은 보석’ 으로 감싸줘도 내 엄마가 보내주신 엽서 한장에 담긴 “사랑하는 내 아들아, 잘 있었느냐, 오늘이 니 생 일이구나” 하신 말씀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다.
근 반세기를 두고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보내주신 어머님 정성 그 깊고 깊은 사랑은 “이 몸 한줌 진토 되어도 그 위에 찬란한 내 엄마의 화단” 이 새겨지리라 믿는다.
어머님을 그리며 찾아나선 공원 길목에서 젊은 엄마와 고사리 아들… 엄마는 아이스크림 콘 한개, 고사리는 마구 흘러내리는 콘 두개를 양 손에들고 코로 혀로 빨아먹는 그 행복한 철부지 모습에 아련한 어린시절 나의 추억에 사로잡혔다.
무더운 한 여름, 엄마 손을 꼭 잡고 깡충깡충 뛰면서 ‘아이스 께끼’ 상점마다 들러 배꼽 터저라 실컷 빨아먹으며 엄마 앞에서 깔깔깔 재롱부리던 그 행복한 시절이 다시 한번, 아니, 딱 한번만 와줬으면! 해가 지고 달이 저물어도 찾아 뵙지 못하는 이 불효자는 김희갑 선생님의 ‘불효자는 웁니다’ 를 눈물로 밤새 부르며 ‘오지 않는 엄마의 생일카드’ 를 늘 마음속으로 받아 본답니다.
<
하세종/시인·한국스토리문학문인협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