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스트레스 신드롬

2025-02-14 (금) 07:32:08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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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자주 쓰는 말 중에 으뜸은 스트레스다. 아침에 눈 뜨고 밤에 눈 감을 때까지 스트레스의 연속 속에 살아간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대는 유령까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조크도 있다. 고참 유령이 낮에 돌아다니는 신참 유령을 보고 말했다.

“야, 너는 유령이 밤에 다녀야지 왜 낮에 다녀!” 신참이 대답했다. “밤이 무서워요. 요샌 살아있는 인간들이 더 무서워요. 인간들이 유령 같고 그게 스트레스가 되어 너무 우울해요. 전 차라리 낮에 다닐 거예요.”

지금 내가 사용하는 차는 1년 전 출시된 신형 Hybrid다. 이 차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지 모른다. 운전석 전면에 장착된 내비게이션 스크린에 온갖 컴퓨터 프로그램이 함께 있지만 나는 map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건 만지기가 겁이 나기 때문이다. 이제 곧 인공지능 AI시대라는데 그 시대는 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가 곳곳에서 암약할지 암담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세대가 살 동안에는 AI가 급격하게 오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있다. 다만 힘들어할 우리들 자식세대가 불쌍하다.

기원전(前) 사람인 순자(荀子)도 그때 이미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음이 분명하다. 그가 한 말이다. “입고 다니는 옷이 화려하고 남자가 여자같이 차려입으며 풍속이 음란하고 행실이 잡스럽고 음악이 거칠다.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 각박하고 예의를 천하게 여기고 용맹을 귀하게 여긴다. 가난하면 도둑질을 하고 부자가 되면 남을 해친다.” 어떤가.

기원전의 삶이나 지금의 삶이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고 순자의 스트레스 원인과 우리가 받는 이 시대의 스트레스가 별반 다름이 없는 것 같아 놀랍다. 그러므로 인생 자체가 스트레스다.

순자가 느낀 “예의를 천히 여기고 용맹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삶의 질이 뒤죽박죽이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삶이 이와 같다. 도무지 예(禮)가 없다. 너나 나나 동등하다는 것도 스트레스다. 옛날 제일 무서운 형이 1년 선배였는데 지금은 아래위로 10년 정도는 맞먹고도 남는다. 이미 순자 때 이런 조짐이 있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더하여 풍속이 음란하고 행실이 잡스럽고 음악이 거칠다는 지적은 바로 지금 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과 다름이 없다. 그런 세상살이가 우울하고 답답하고 그러다가 나만 소외되고 있다는 절망감이 밀려들고,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청춘남녀의 독백이 바로 스트레스의 징표일 것이다.

나와 관계없는 대형 사건사고도 어느새 내 삶으로 뛰어 들어와 괴롭히고, 청빈하게 살고 싶어도 “그렇게 살아서는 안돼! 도둑질을 해서라도 잘 살아야 돼!” 라고 외치는 어이없는 작태가 우울증을 만들어내고 있다.

스트레스가 원인인 질병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공황장애, 우울증, 불안, 초조 등 이름을 알 수 없는 스트레스성 질환이 상상을 초월한다. 극단적 선택이라고 미화시키는 자살자의 폭증도 결국은 스트레스가 주범이고 사망원인 1위인 각종 암도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설명한다.


정말 세상은 왜이런가. 테스형도 답을 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그리하여 화목 화해 같은 단어는 사전에나 등재되었고 고독사를 눈앞에 둔 개인만이 스트레스라는 짐을 지고 삶의 언덕을 오르내리는 희한한 모습이 되었다.

이제 스트레스는 개인의 차원도 넘어서고 있다. 결국 스트레스 집단 발작으로 핵이 터질지도 모른다. 망치를 든 자는 때릴 못을 찾고 칼을 든 자는 찌를 곳을 찾는 원리가 핵인들 놔두겠는가.

이미 성서는 예언하고 있다. 물로 한번 망한 세상의 다음 차례는 불로 망할 것이라고. 불의 집합은 핵무기가 아닌가. 오늘날 핵을 소유한 나라의 군주들을 보라. 결코 정상적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스트레스의 노예들이 핵 단추의 옆에서 손가락을 들고 서성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할 것인가. 방법이 한 가지가 있긴 하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거절하는 지혜를 배우는 길이다. 내 가슴에 스트레스가 찾아 와 안주하지 못하도록 삶의 리듬을 바꾸는 것이다. 성현의 가르침을 새기고 잔잔한 음악을 듣고, 흘러간 명화를 보고, 그러나 그런 미끈한 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달 수 있을 것인가.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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