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생각] “성공의 삶”

2025-02-12 (수) 07:27:21 임형빈/한미충효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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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며칠 전 한국일보 오피니언을 통하여 “성공의 키워드”란 제목으로 글을 소개한 바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세워놓은 계획이나 신념을 절대 포기해서는 성공을 이룰 수 없다 함을 말한 바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셉”이나 “다윗” 같은 많은 인물들도 있고, 근세에 와서도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들이 허다하다.

나는 우리 풍천임씨 가문에 나의 ‘빈’짜 돌림 위에는 ‘순’자 그 위에는 ‘재’자 돌림으로 항렬로 할머니뻘이 되는 ‘임 숙재’ 숙명여대 총장의 성장스토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7-80년 전 내 나이 25-6세 되던 때다.

그의 고향은 충남 예산이고 어린 시절 17세 나이에 시집을 갔다. 그리고 불과 2년 만에 졸지에 남편을 잃고 19세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됐다. 동네에서는 그를 볼 때마다 “불쌍하다, 나이가 아깝다” 하고 위로해 주었건만 독특한 시련이었고 고난이었기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한다.


어느 날 그는 마음을 다잡아먹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잘라버렸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동정의 말들이 듣기가 너무나 부담스러웠고 친정이라도 도망간들 뽀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로 결심하고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낯설고 물 설은 서울생활이 어린 과부에게 녹록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식당에서 설거지와 남의 집 빨래도 하며 차츰 서울 생활에 눈이 떴을 때 어느 부유한 집의 가정부로 들어갔다.

그 집에서 밤낮으로 열정을 쏟아 부으며 성실하게 일했다. 주인 댁 부부도 마음씨 좋았고, 주인어른으로부터 신뢰와 인정을 받게 되었다. 어느 날 주인어른께서 말씀이 “나이도 젊은데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해보라” 하시기에 조심스럽게 “첫째는 야간공부와 두번째는 일요일날 교회를 갔으면 좋겠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정말 기특한 생각이라며 쾌히 들어주셨다.

그래서 주인 어르신의 큰 은혜에 감읍 더 열심히 일을 했고, 밤에는 숙명여고 야간 반에서 죽기 살기로 공부에 전념한 결과 최우수 학생으로 인정받아 장학생으로 공부하여 스물두살 되던 해( 1913년) 졸업을 했다. 그리고 1917년 모교에서 일본으로 유학까지 보내주어 동경여자사범대학의 소정의 과정을 다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1921년) 할때 그때의 나이는 30세였다.

당시는 왜정 때라 조선 총독부에 장학사로 임명받게 되었고, 1945년 해방과 함께 숙명여자 전문학교로 승격 학장으로 취임하였다가 10년 후인 1955년 숙명여자 대학교를 세우고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17세에 시집을 가 남편이 죽고 식모살이까지 하던 19세 시골뜨기 과부가 아니었던가!

그가 파란만장한 세파를 이겨내고 무슨 일이든 능력을 발휘 승승장구 마침내 대학 총장에 이르게 된 대단한 여장부가 아니었던가?
감탄 감탄할 뿐이다.

<임형빈/한미충효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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