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택 화재 현장 건강에 위험… 보호장비 착용해야

2025-02-1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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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독성 물질 무방비 노출
▶ ‘호흡기·혈관·피부’ 질환 피해

▶ N95마스크·전신 보호복·고글
▶ 청소도 반드시 안전 지침 따라

주택 화재 현장 건강에 위험… 보호장비 착용해야

한 남성이 지난 1월 8일 알타데나 화재로 전소된 주택에서 잔불을 끄기 위해 버킷으로 물을 붓는 모습. 화재 현장에 방문할 때 반드시 보호 장비를 착용해야 호흡기 및 심장 질환 발생을 막을 수 있다. [로이터]

말리부 화재 피해자 마이클 잉그램 씨는 완진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물품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네 인근 검문소에 도착했을 때 자원봉사자들이 전소된 주택에 들어가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보호 장비 착용 없이 15분 이상 머물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보호 장비 키트를 건넸다. 잉그램 씨가 집에 도착했을 때 피해 현장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집을 지탱하던 철제 빔이 녹아내렸고 콘크리트 지반도 이곳저곳이 심하게 뒤틀렸다. 무엇보다도 하나라도 남았을 것으로 기대했던 가족들의 물품은 모두 재로 변해 바닥을 덮고 있었다. 잉그램 씨는 잿가루 흡입으로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집을 뒤질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아쉬운 마음을 접고 발길을 돌렸다.

■호흡기 및 심장 질환

잉그램 씨처럼 이번 LA 산불 피해를 입은 주민 수천 명은 집에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물건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화재 현장에 남아있는 독성 잔해물 흡입하거나 접촉하면 장기적으로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화재 피해 주택에 방문할 때 반드시 각종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집 안팎을 안전 지침에 따라 청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연재해 현장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 메디컬 미션 어드벤쳐의 에벌린 웡 디렉터는 화재가 발생하면 건강을 해치는 두 가지 위험 요인이 뒤따른다. 첫 번째 위험 요인은 화재 당시 발생하는 연기이고 두 번째 위험 요인은 화재 진압 뒤에도 화재 현장에 장기간 남아있는 각종 독성 화학 물질이다. 웡 디렉터에 따르면 마우이 화재가 진압된 뒤 귀중품 등을 찾기 위해 피해 주택을 찾은 피해 주민들 사이에서 호흡기 질환이 유행병처럼 번진 사례가 있었는데 이번 LA 산불로 비슷한 2차 피해가 우려된다.

산불 등의 화재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그을음과 재와 같은 미립자에 노출되기 쉬운데 모두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입자다. 미세먼지(PM2.5)로 분류되는 그을음과 다른 입자는 폐나 혈관에 침투해 천식, 심장 질환 등을 일으켜 조기 사망을 유발한다.

이번 LA 산불과 같은 도심이나 주택가 화재는 중금속, 석면, 납과 같은 인체에 훨씬 치명적인 독성 물질과 개스를 공기 중에 배출시킨다. 주택가 화재가 발생하면 전기, 플라스틱, 단열재, 금속 등 주택 용품 연소로 산불보다 더 많은 유해 물질이 발생한다.

■반드시 보호 장비 착용

화재 피해 주택을 방문할 때 보호 장비 착용이 필수다. 보호 장비는 유해 물질 연소로 발생한 그을음, 재, 유해 입자와 노출을 방지하는 1차 장벽 역할을 한다. 화재 지역을 걸을 때 바닥에 가라앉은 유해 물질이 공기 중으로 번져 흡입하거나 눈과 피부에 접촉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보호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비영리 인도주의 의료 단체 디렉트 릴리프는 최근 LA 산불 피해 현장에 N95 마스크 200만 장과 화재 주택 재방문용 보호 장비 키트 수천 개를 제공했다. 보호 장비 키트에는 전신 보호복, 글러브, 보호안경, 신발 덮개, N95 마스크 등이 포함됐다. N95 마스크는 수술용 마스크나 일반 천 마스크에 비해 미세 입자를 걸러내는 기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재와 기타 미세 입자들은 옷에 달라붙어 2차 노출 피해를 일으키기 쉽다. 가급적이면 N95 마스크 재사용을 피하고 전신 보호복은 반드시 세탁해서 재사용해야 안전하다. 알리샤 클라크 디렉트 릴리프 부대표는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고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지만 부주의한 화재 현장 방문으로 심각한 건강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메디컬 미션 어드벤처의 웡 디렉터에 따르면 이번 LA 산불 발생 직후에도 호흡기 합병증과 관련 증상으로 호소하는 환자가 늘었는데 대부분 마스크와 같은 보호 장비 착용을 소홀히 했던 환자들이다.

■안전한 방법으로 청소

화재로 인한 유해 물질은 바닥, 벽, 천류 등의 표면에 쌓인다.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유해 물질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제거하는 청소 방법이 중요하다. 가장 먼저 보호 장비를 착용해 흡입 위험과 눈, 피부 등의 노출을 방지해야 한다. 임산부, 노약자, 기저 질환자 등은 청소 작업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청소 뒤 유해 물질이 실내에 다시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을 열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실외에 여전히 연기가 남아있고 공기 질이 좋지 않다면 창문을 모두 닫고 ‘냉난방’(HVAC) 시스템을 가동하면 공기 청정기 효과가 있다. 필요하다면 에어필터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HVAC 가동을 반복해도 좋다.

HEPA 필터 기능이 있는 진공청소기를 사용해 청소하면 유해 물질 제거 효과가 뛰어나다. HEPA 필터는 고효율 미세먼지 공기 필터로 0.3마이크로미터 이상의 입자를 99.97% 이상 제거하는 매우 높은 필터링 성능을 가지고 있다. 재가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빗자루나 걸레를 사용하기 전에 수분을 약간 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청소한 재를 하수구에 흘려보내면 수질 오염이 발생하기 때문에 하수구나 빗물 배수관에서 멀리 떨어진 토양에 버려야 한다.

화재로 발생한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은 탄 냄새를 일으키는 독성 가스로 천류, 바닥, 벽 등의 표면에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VOC는 유해한 화학물질을 공기 중으로 다시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 VOC를 영구적으로 제거하려면 표면을 일반 청소제를 사용해 물걸레질하고 천 제품을 세탁기로 세탁해야 한다.

개스에 노출되었거나 연기 냄새가 나는 의류, 침구, 커튼, 카펫 및 다른 천 제품은 모두 세탁하는 것이 좋다. 연기 냄새가 나면 아직 표면에 VOC가 남아 있다는 뜻으로 청소나 세탁이 필요하다. 일반 비누를 사용하면 유해 물질 제거에 도움이 된다. 화재 잔여물 속 화학물질과 반응할 수 있기 때문에 무향 청소제를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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