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정훈 기자의 <음악 산책>

2025-02-07 (금) 11: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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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의 <음악 산책>
후두둑. 둑. 둑.. 빗소리를 들으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 대해 쓰고 있다. 음산한 바람소리와 함께 번져오는 피아노의 연탄음이 어딘가 우울하면서도 퇴폐적이다. 퇴페?… 실이익이 없다는 뜻이고, 시대정신에 반한다는 뜻인데 사실이 그런 것 같다. 지나친 감상주의는 쓰레기 통에나 버려라. 시대정신을 무시한 채 미적 쾌락만 추구하는 음악…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어둡게 내리 깔리는 선율은 무척 비관적이며 왠지 울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2016년 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1순위에 올랐던 곡이다. 왜일까? 만약 이곡이 클래식만 아니었다면 독재정권 시대에 금지곡으로 뽑혔을만한 곡이었는데도 말이다. 시종 건설적인 면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이곡을 좋아하는 곡 1순위로 꼽았다. 왜? 우울하다고 해서 결코 재미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뭐니뭐니 해도 끝이 좋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다. 어둡게 내리깔리는 첫 부분은 그렇다 치고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라스트 댄스(선율)는 현대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심리학적) 모더니즘의 극치를 선보이고 있다. 마치 라흐마니노프만이 줄 수 있는 로맨티즘의 절정, 분수령이었다고나할까…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야말로 현대인의 좌절과 희망… 퇴폐적임과 동시에 탐미주의의 결정체이기도 했다.

당신은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십니까? 라흐마니노프…? 사실 그렇게 유명한 곡들을 많이 남긴 작곡가도 아니다. 피아노 협주곡 2번, 3번, 파가니니 주제 광시곡 18번 곡 등이 알려진 곡들의 전부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유독 라흐마니노프라는 이름이 유명하다. 피아노 협주곡 2번때문이다. 사실 이 곡은 겨울에 먹는 빙수처럼 찬기가 매력이 있는 곡이긴하다. 겨울 속의 데이트… 결코 쉬운 행위는 아닐것이다. 아마도 홀로 걷는 사람이거나 애인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겨울바람을 맞으며 걷기는 쉽지 않다. 실연당한 사람이거나 상처입은 데이트… 뭐 이런 분위기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왠지 더욱 실존적으로 들려오는 음악… 1901년에 발표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스매싱 히트를 기록했다.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곡치고는(1919년에 발표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1808년에 발표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못지않는 선세이션을 일으켰다.


고독이란 체험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경험적 실체인지도 모른다. 만약 이 곡이 반세기 이전에 발표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고독은 진정 아름다운 것일까? 어딜가나 시끌벅적…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에서 고독이란 그저 사치일 뿐이었다. 미국와서 SF의 바닷가, 시클리프라는 동네 근처에 살았는데 고급 주택가의 눈부신 창문들을 바라보며 갑작스럽게 행복이라는 단어와 고독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체험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바닷가라는 이유, 부유한 동네분위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밀려오는 고독감은 삶의 공허란 결코 물질로서는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현대인의 고독이라고나할까, 도시서정을 짙게 깔고 어두운 서사시를 노래하고 있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한마디로 ‘절망 플러스 감상주의’ (라는 키워드)에 어울린다고나할까… 끝에가서 거대하게 폭발하는 열정감 또한 시작의 어두운 절망감에 비하면 종잡을 수 없을만큼 감정의 널뛰기(?)가 심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 모습 그대로 너무도 아름답고 강렬한 로맨티즘을 체험시킨다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정신과 의사였던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했는데 이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준 이가 바로 달이였기 때문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였자 작곡가였는데 피아니스트로서의 능력보다는 작곡가로서의 능력에 더 큰 기대를 걸었던 모양이었다. 1번 교향곡의 실패로 깊은 절망감과 우울증에 빠진 라흐마니노프를 구해준 음악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예민했던 라흐마니노프는 생전에 다시는 교향곡 1번을 거들떠보지 않을만큼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하는데 피아노 협주곡 2번이야말로 낭만을 낳는 거위는 절망,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역설적인 선율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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