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를 일기로 잘 사시다 떠나신 서예가 한분의 장례예배에 참석했다. 그 전날 따님이 아버지의 유품을 협회에 증정하겠다며 서예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과 종이, 붓 등을 갖고 오셨다. 네 박스나 되었다. 자손들도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을 어찌 처리해야할 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겠지만 딱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도 아닌데다 우리도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를 사적인 것들도 있었다. 장례식 후 식사 자리에서 우린 세상 떠나기 전, 다 버리고 깨끗이 치우고 가자고 입을 모았다. 자손들에게 ‘짐’을 넘기지 말자고. 하지만, 말이‘깨끗이 치우고 가고 싶다’지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린 갖고 있는 게 너무 많다.
버리는 것에 대해 유투브에 한번 클릭만 하면 알고리즘 현상으로 별의 별 제목들이 화면에 뜬다. ‘집에서 당장 버려야 할 물건 5가지’, ‘건강하려면 지금 당장 버려야 할 물건 6가지’, ‘아깝지만 꼭 버려야 할 물건 3가지’, 7가지, 10가지, 20가지 100가지. 관심을 끌도록 혹 하는 제목들이 끝도 없이 줄을 지어 버려야 할 물건들을 얘기하고 있다. ‘버려도 우리의 일상에 어떠한 지장도 주지 않는 것들’이라는 제목도 있다. 살림을 잘 하는 주부나 정리정돈을 전문직으로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정돈을 잘 하려면 우선 버리는 것 부터 해야한다’는 것이다.
버려야 한다? 그러고 보니 부엌에서 리빙룸, 침실까지 온통 버려야 할 물건들로 꽉 차있는 것 같다. 찬장 안에, 옷장 안에, 신장 안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쓰지도 않으면서 넣어놓고, 쌓아놓은 물건들. “오우 마이 갓” 정말로 “하나님 맙소사”다.
버리라고 한다. 비싼 돈 주고 샀지만 지금은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들. 오래 된 덩치 큰 전자제품들. 안쓰는 운동기구들. 안입는 옷들. 오래된 이불 침구들. 화장품. 처방약품. 밀폐용기.잘 쓰지 않는 접시, 컵. 짝 안맞는 양말. 안 읽는 책들. 등등등. 다 버리란다.
그런데,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을 버리는 게 쉽지는 않다. 못 버리는 이유도 다양하다. 추억이 깃든 물건이나 사진들, 아이들이 공부나 운동으로 받아온 상장 상패, 살이 좀 빠지면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바지, 유행이 되돌아올지도 모르는 긴 코트, 시간 날 때 읽겠다는 책들.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로 버리기는 커녕 세월이 갈수록 오히려 쌓여만 가고있다. 살 때는 신중하게, 버릴 때는 과감하게! 라는 구호라도 외쳐야 겠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버려야 할 것들이 어디 꼭 눈에 보이는 물건 뿐이랴? 필요없는 것들을 다 버렸다고 우리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을까?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 보듯이 우리 마음 속도 한번 들여다 보면 어떨까? 내 마음 속에 있는 욕심과 편견, 거짓과 어리석음, 미움과 질투를 버릴 수만 있다면… 비싼 돈주고 산 물건이지만 유행이 지났거나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야 하듯이, 그래서 넓직하고 쾌적한 공간을 만들 수 있듯이 우리 마음도 비워버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보이지도 않으면서 우리를 괴롭게 하고 있는 쓴 뿌리들은 물건을 버리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지만, 의외로 쉽게 훌훌 털어버릴 수도 있다. 마음의 평안을 갖고 싶은 마음. 바로 그 마음 먹기에 달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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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김 서예가ㆍ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