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 시의원·대법원 판사·NFL 구단 사장도 배출

2025-01-29 (수) 12:00:00 라스베가스=노세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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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베가스 한인사회 발전상과 현황

▶ 초창기 호텔·카지노 근무… 직업군 다양화
▶ 1974년 한인회 첫 출범… 한인사회 급성장
▶ 가주 한인들 이주 러시… 대한항공 직항편도

1930년대 네바다 주정부가 도박업을 합법화한 이래 라스베가스가 도박업과 오락업을 주 산업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관광도시 중 하나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다. 당시만 해도 라스베가스 인구는 6만4,000여명이 거주하는 소도시였다.

공식적인 1호 한인 이민자는 1959년 문을 연 스타더스트 호텔과 공연 계약을 체결하고 라스베가스에 입성했던 김시스터즈 멤버들이었다. ‘목포의 눈물’로 잘 알려진 원로 가수 이난영씨의 딸들인 김숙자·김애자씨와 조카 이민자씨로 결성된 김시스터즈는 스타더스트 호텔과 전속계약을 맺고 당시 유행했던 스윙재즈를 메인으로 로큰롤, 팝송, 컨트리 뮤직, 국악 등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중반 개정 이민법이 시행되면서 한인 이민자들이 라스베가스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1974년에는 마이클 김씨 등의 주도로 라스베가스 한인회가 설립됐다. 라스베가스에서 한인으로선 처음으로 부동산 에이전트 자격을 취득한 김봉훈씨가 가족들과 함께 라스베가스에 정착한 시점은 1975년. 올해로 이민 50주년을 맞은 김씨는 “그 때만해도 라스베가스에는 약 500명의 한인들이 카지노 호텔 주변 아파트에 모여 살았고, 대부분은 호텔에서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회상했다.


1980년대 들어 한인 커뮤니티가 서서히 형성되면서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는 한인들은 카지노 호스트나 딜러로 자리 잡았고, 조금씩 자본을 축적한 한인들은 주로 세탁업에 뛰어들었다. 한인 인구도 함께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특히 나날이 치솟는 물가와 집값, 세금 폭탄 등을 피해 캘리포니아에서 이주한 한인들이 많아졌다. 한인 봉제협회장을 지냈던 김성기씨는 2010년대 중반 업체를 라스베가스로 이전한 사례다.

지난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따라 운항이 중단됐던 대한항공의 인천-라스베가스 직항 노선은 관광 수요 회복에 따라 2년4개월만인 2022년 운항이 재개됐다. 라스베가스 한인 인구 급증을 반영하듯 운항 스케줄도 주 3회에서 주 7회로 확대돼 한국과 한인사회의 거리가 한층 좁혀졌다.

한인들의 직업군도 다양해졌다. 카지노 업계와 세탁업 위주에서 요식업 등 자영업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인들이 급증했다. 라스베가스 한인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케빈 김씨는 “라스베가스 네바다 주립대(UNLV)를 졸업한 1.5~2세들은 투자그룹을 결성해 관광객과 타인종을 겨냥한 요식업에 뛰어들었고 의사와 변호사, CPA 등 전문직에도 속속 진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라스베가스 정·재계에서 활약하는 한인들도 눈에 띈다. 라스베가스 4지구 시의원인 프랜시스 앨런은 한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여성이다. 지난 2004년 클락 카운티를 관할하는 37지구 네바다주 하원의원에 당선돼 주 역사상 최초의 한국계 선출직 공직자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법조계에선 패트리샤 이 주 대법원 판사, 크리스 이 노스 라스베가스 시판사가 대표적이다.

2023년부터 NFL 서부지구팀인 라스베가스 레이더스 사장을 맡고 있는 인물은 한인 혼혈 여성 샌드라 모건이다. 모건은 여성으로는 3번째, 아사아계와 흑인 여성 최초의 NFL 프로풋볼팀 사장이 됐다. 네바다주 전역에 총 22개의 대형 주류 체인점 ‘리스 디스카운트 리커’ 직영하며 연매출 1억 달러 이상을 올리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시킨 고 이해언씨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라스베가스=노세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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