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집단창의력’

2025-01-27 (월) 01:36:37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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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닥친 엄청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링컨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내각을 구성했다. 신생 공화당의 모든 당파-옛 휘그당, 자유토지당, 노예제도를 반대하던 민주당파, 보수파와 급진파의 연합, 강경파와 온건파의 연합-를 대표하는 내각이었다. 훗날 링컨이 말했듯이 “취임한 즉시, 내 짐을 함께 짊어질 사람들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한” 때문이었다. 제임스 뷰케넌 대통령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말하자면 대통령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지지자들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면, 링컨은 자주적이고 결단력 있는 사람들로 내각을 구성했다. 그들은 링컨보다 공직 경험이 많았고, 더 많은 교육을 받았다. 내각을 그렇게 구성한 이유에 대한 링컨의 대답은 간단했다. 국가가 위험에 직면한 때문이었다. (도리스 굿윈의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중에서)

링컨 내각으로 들어 온 각료들은 모두 당대의 최고 엘리트이며 유능한 전문가에다가 야심가였다. 링컨의 최대 정적이었건 윌리엄 슈어드는 국무부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공화당의 급진파였던 살몬 체이스는 재무부 장관으로 입각했고, 휘그당의 저명한 법률가인 에드워드 베이츠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열렬한 민주당원인 에드윈 스탠턴은 국방장관이 되었다. 이렇게 초당파적이며 다양한 내각이 구성되자 모든 정치 지도자들은 링컨을 한갓 무명의 변호사가 아닌 미합중국의 권위 있는 대통령으로 인정해 주었다. 링컨은 초당파적 내각을 활용하여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노예제도를 조기에 종식시키고 미국을 최고 선진국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인류 역사상 첫 유인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의 직업은 자전거 수리공이었다. 어릴 때부터 늘 함께 놀고 함께 지냈다. 장난감도 공부하는 책도 공동 소유였다. 라이트 형제는 나눔과 협력의 정신을 교회공동체 생활에서 터득했다고 증언했다.


폴 세잔(Paul Cezanne)과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의 협력은 유명하다. 세잔이 아직 화단(畵壇)의 무명이었을 때 피사로는 후기인상파 화가로 유럽전역에 명성을 떨쳤다. 사피로는 외로운 세잔을 자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그림을 그렸다. 사피로의 탁월한 풍경화 기법을 전수받은 세잔은 곧 천재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잔은 사과정물화와 생트 빅투아르(Sainte Victoire)의 연작으로 후기인상파의 대표적 화가가 되었다. 집단협력은 천재성을 낳는다.

‘위로의 아들, 권위자(勸慰者)’ 라는 별명을 지닌 바나바는 능력자 혹은 야심가는 아니었다. 그는 안개꽃같이 작은 자였고 섬 출신의 무명인이었다. 그러나 바나바 없는 초대교회, 바나바 없는 안디옥 교회, 그리고 바나바 없는 선교를 생각할 수 있을까. 없다.

바나바는 변방 다소에 은둔하던 무명의 바울을 안디옥교회로 데려다가 세계 선교의 리더로 세우고 그를 섬겼다. 바나바는 서번트(servant) 리더십의 롤 모델이다.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이 바울을 거부할 때 바울을 변호한 사람이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바울에게 안개꽃 같은 협력자였고 유능한 co-leader였다. 누가 최고의 리더인가. 타인의 협력을 이끌어낼 줄도 알고 남에게 기꺼이 협력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당신은 리더인가. 바나바와 링컨의 초협력 리더십을 통하여 집단창의력의 원석을 세련되게 가공하는 비결을 배우라.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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