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주얼하고 가족 친화적인 미국식당을 찾아 음식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고 물을 요청했는데 담당 서버가 물을 갖다 주지 않았다. 2번 3번 4번 부탁했지만 물은 안 왔다. 참다못해 서버에게 무엇이 문제냐며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서버는 언짢은 얼굴로 물을 가져왔다. 서버는 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양 옆 테이블 손님들과 잡담을 나누며 “코로나를 가져온 아시안들이 예의가 없다”고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끝나고 팬데믹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시안 혐오가 극에 달했던 시기에 기자가 직접 겪은 일이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시절 초반부터 ‘반이민 행정명령’을 들고 나오며 ‘우리와 그 외 나머지’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졌고, 무슬림 7개국 출신들의 미국 입국이 금지되기도 했다. 미국인의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벌인 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유색인종 미국인들은 내동댕이쳐졌다. 트럼프의 ‘우리’에 유색인종 미국인은 제외됐다.
2017년 8월12일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대규모 폭력시위가 일어났다. 당시 트럼프는 양측 모두에 유혈사태의 책임을 돌리는 등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 비판은커녕 백인우월주의자들과 충돌을 일으킨 흑인 시위대를 비난하고, 동상 철거에 나선 지방정부에도 화살을 돌렸다. 미 정치권과 기업인들, 트럼프 지지 세력으로 꼽히던 월가의 제이미 다이먼과 공화당 인사들까지 비판을 했지만 트럼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랬던 그가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 첫날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으며 수십 개의 행정 명령에 사인을 했다.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와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등 미국 정책의 대대적인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가장 주목받은 것은 역시 또 반이민 정책이었다.
합법 이민자로서 트럼프가 내세우는 반이민 정책 중 수긍할 만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예컨대 원정출산 봉쇄나 범죄 기록이 있는 불법체류자 추방 같은 부분은 반갑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트럼프가 두렵다. 그가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갈 때 사용하는 특유의 거침없는 언사와, 이를 통해 이민자 전체에 부정적인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이 무섭다. 시민권자이든 영주권자이든,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인종차별에 신분확인 절차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단지 ‘이민자’일 뿐이다. 트럼프가 내뱉는 자극적인 말들이 잠재적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마치 ‘차별 면허’를 부여하듯 작용해, 그들이 깨어나 활개칠까 우려된다.
흑인들은 오랫동안 차별에 대항하며 목소리를 키워왔다. 하지만 소수 중에 소수인 우리 한인들의 목소리는 아직 너무 작다. 게다가 한인들은 하나된 목소리를 내는 데 익숙하지도 않다. 흩어진 목소리로는 우리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어렵다. 지금은 정치적 견해를 떠나 커뮤니티 차원에서 한목소리를 낼 때이다. 무조건 반대하거나 찬성하라는 것이 아니다. 옳은 것은 인정하되, 부당한 것에는 단결해 싸울 줄 아는 한인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
리스 프로그램이 끝나 차를 리턴하러 딜러에 갔을 때, 도와주던 직원이 너무 빠르게 말해 “영어가 서투르니 조금 천천히 말해 달라” 부탁한 적이 있다. 이후 직원은 지나치게 느린 말투와 과장된 손짓으로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는 다정하고 유쾌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은근하지만 뚜렷한 그 직원의 조롱과 무시를 말이다. 앞으로 4년 동안 트럼프 통치 아래 이민자들이 겪게 될 차별과 불편함이 얼마나 심화될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그러나 트럼프는 다시 대통령이 됐고 우리는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 내가, 너와 내가, 우리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정답은 “뭉치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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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