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척결’ 이스라엘 극우세력 숙원에 동조하는 말
▶ 1948년 ‘나크바’ 연상…아랍권 ‘레드라인 넘었다’ 집단 항의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을 아랍권 국가로 이주시키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장에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AFP통신은 26일 아랍연맹이 트럼프 대통령의 강제 이주 계획에 대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향에서 뿌리 뽑으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아랍연맹은 이어 "강제 이주와 퇴거는 인종청소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통화하면서 팔레스타인인을 더 많이 수용하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자지구가) 거의 모든 게 무너졌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일부 아랍 국가와 협력해 그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다른 곳에 주택을 짓고 싶다"며 "모든 것을 '깨끗이 청소'(clean out)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은 가자지구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자는 이스라엘 극우세력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주권 국가로 공존한다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해온 미국의 기존 입장과도 결이 다르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스라엘 극우가 주장해왔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제안이라고 지적했다.
WP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지난 75년간 강제 이주를 반복적으로 경험한 아픈 역사가 있다고도 짚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70만명이 넘게 쫓겨나는 '나크바'(대재앙)를 경험한 바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장 사남 바킬은 팔레스타인인들은 강제 이주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런 아이디어에 특히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주변 국가로 이주시키는 문제는 아랍국가, 특히 요르단과 이집트에는 '근본적인 레드라인'이라고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위험하고 불법적이며 실행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이 잇따랐다고 보도했다.
강제이주는 전쟁범죄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민족과 같은 특정 집단의 말살을 목적으로 강제이주를 기획한다면 이는 인류 최악의 범죄로 꼽히는 제노사이드(genocide)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시민을 지원하는 인권단체 아달라의 하싼 자바린 대표는 "전쟁 직후 가자지구를 '청소'하는 것은 사실상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인종청소를 통해 전쟁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파리정치대학의 국제법 강사인 오메르 샤츠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스라엘 극우의 요구를 반영한 "인종청소 요구"라고 꼬집었다.
미국이슬람관계협의회(CAIR)는 "망상적이고 위험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를 포기할 의사가 없으며 주변 국가들도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를 도울 의사가 없다"고 강조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의 인권법학과장 버라크 메디나는 "강제 이주는 명백히 불법일 뿐 아니라 비현실적"이라며 "주변국 어느 나라도 고국에서 추방된 사람들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이는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과도 모순된다"고 했다.
WP는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이 미국의 정책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요르단과 백악관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통화 내용에도 가자주민 이주 관련 내용은 포함돼있지 않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