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꿈을 꾸세요

2025-01-24 (금) 07:47:45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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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좋은 꿈은 사흘을 간다는 속설이 있다. 기막히게 좋은 꿈을 꿨는데 하루 종일 기다려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어 투덜댈 때 할머니나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기억이 있다. “꿈은 사흘은 간다니 더 기다려보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린 손자나 아들의 꿈을 단칼에 끊어버리기가 아쉬워 며칠이라도 더 기다리게 하신 말씀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꿈은 단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뭔가를 이뤄달라고 정성껏 기도를 했어도 지긋이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 사람도 그렇긴 하겠지만 유난히 우리 한국 사람은 잘 기다리지 못하는 성향이다.

“빨리빨리”가 한국인의 대표 상표처럼 통용되고 우리 모두는 그 뜻이 무엇인지 다 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도 조바심이 있어 애써 버튼 옆으로 가고, 그러니 돼지꿈을 꿨다면 바로 복권을 사러가야 한다. 허지만 좋은 꿈은 그날 당장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내일, 사흘 후, 아니면 일 년쯤 묵혀야 응답이 올지 모른다.


나는 사소한 일을 두고도 간단하게 기도를 하는 편인데 비교적 성취가 빠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몇 년씩 걸리기도 하고 어떤 제목은 아예 감감무소식인 사안도 적지 않다. 그래도 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손해 날 일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금년 새해 들어 꿈을 꾸었는가. 작년 소망도 아직 응답이 없어 금년은 아예 꾸지 않기로 했는가. 그렇다면 실수한 거다. 일단 꿈은 꿔야 한다. 순서대로 응답이 오기도 하지만 꿈의 비중에 따라 순서가 바뀔 수도 있다. 양력새해 음력설 가리지 말고 꿈을 꾸고 소망과 포부를 품어야 한다. 허나 제발 부탁은 허황된 꿈은 꾸지마시라. 허황된 것은 꿈이 아니라 망상이요 미망이며 공상이다.

어떤 사람이 새해 들어 꿈을 꾸는 대신 점을 보러 갔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샤먼 숭배는 알아줘야 하고 무당 백만 명 시대는 애 저녁에 돌파했다. 남들이 무슨 법사를 찾고 용하다는 무당을 만나 점을 쳤다고 하면 앞에서는 삐죽 거리면서 뒤로는 은근슬쩍 점 안보는 인간이 없고 웬만한 공영 방송에서도 때마다 철마다 무당을 대놓고 출연시킨다. 뭣 묻은 개가 뭣 묻은 개를 욕한다는 우리 속담은 정말 탁월한 교훈이며 가슴에 새길 명언이다.

아무튼 점집을 찾아 간 이 사람, 자기의 남루한 운명을 한탄하며 뭔가 획기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겠는지를 진지하게 물어봤다. 날마다 “오늘의 운세”를 보지만 어느 것 하나 되는 일이 없다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점보는 이가 이 사람의 사주를 끄적거리더니 말했다.

“희한합니다. 금년 당신의 운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조짐이 보입니다. 돈벼락을 맞을 것 같습니다. 조심하세요.” 이 사람 너무나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점집을 나왔다. 돈벼락을 맞는데 조심하라는 말은 뭐냐고 투덜거리며 정신없이 빨간 불이 켜진 것도 모른 채 건널목을 건넜다. 순간 달려오던 트럭에 치었고 다행히 목숨은 건졌는데, 놀라운 것은 그 트럭이 은행 돈을 가득 싣고 가는 차였다는, 우스개다.

꿈은 대가를 요구한다. 당신은 아는가. 축구에서 “슛 골인” 하는데 걸린 시간은 보통 3초가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그 3초를 위해 선수는 10km 이상을 뛰고 달린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꿈이지 꿈이란 기다림의 결정체임을 명심하라. 그리고 그 기다림 전에 세운 당신의 구체적 소망이 꿈이라는 포장지에 들어있음을 기억하라.

요즘엔 한국이고 미국이고 자발적 청년실업이 많다는 게 중론이다. 서울에서는 월급 3백만 원, 뉴욕에서도 주급 500불은 기본으로 주겠다는 데도 일하겠다는 청년이 없다는 것이다. 놀기 바빠서 일을 못하겠다며 자원해서 캥거루족으로 세월을 죽이고 있어 한국은 동남아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가 되고 있음은 뉴스도 아니다. 모르겠다. 꿈이 없는 시대를 바라보며 걱정하는 것은 동서고금 꼰대들의 전유물일지.

정용철이 이런 글을 썼다.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저것이 옳다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이해가 된다. 꿈보다는 그저 눈을 감고 사는 게 옳을 수도 있다.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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