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뺄셈의 문법’
2025-01-21 (화) 07:02:42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처음 사진을 시작하면 “어떻게 하면 현실과 똑같이 찍을 수가 있을까?” 하고 고민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담아 그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를 덧셈의 사진이라고 합니다. 덧셈의 사진은 ‘증명’ 또는 ‘설명’이라는 근대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화각이 넓어지고 구도의 틀이 무너지면서 ‘그렇고 그런’ 사진이 나옵니다.
글에 비유한다면 지루한 설명문이라고나 할까요? 이는 초보적인 현상입니다. 표현하고 싶은 주제가 건강한 숲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보자라면 뒤로 물러나 숲의 모든 것을 앵글에 담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뺄셈의 문법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숲의 건강성을 상징하는 요소를 찾아 시각의 틀을 좁혀가게 됩니다. (주기중의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중에서)
후기인상파 화가의 대표적 인물인 폴 세잔(Poul Cezanne)은 사과 정물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뺄셈의 문법’을 대담하게 적용했다.
진정한 사과성(appleyness)을 지닌 사과를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쟁반에 담긴 사과의 재현이 아니라 끊임없이 불필요한 클리셰(cliche)를 제거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루하고 상투적인 것을 걷어내므로 사과의 내면을 투시하고 관통하는 사과성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런 확신 때문에 세잔은 초상화 모델에게 조차 “움직이지 마세요. 사과처럼 가만히 앉아있으란 말입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잔은 사과 정물화의 진정한 사과성을 얻기 위하여 그림이 미완성으로 보이게 하는 대담한 생략도 불사했다. 어떤 것을 배재하려는 세잔의 의도는 다른 어떤 것을 살려내려는 강렬한 목적과 연결된다. 세잔은 갈파했다. ‘비워라. 그러면 새로운 것을 얻을 것이다.’
포도농사를 짓다보면 가지와 이파리만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잘 익어 매달린 열매를 포기해야 할때가 많다. 이것을 그린수확(green harvest)라고 한다. 경험이 많은 농부는 포도열매의 색깔이 보라색으로 익어가기 전에 과감하게 잘라내 땅에 떨어트린다. 그린수확의 목적은 첫째로 극상품 포도를 얻기 위해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함이고, 둘째로는 당도가 낮은 포도열매가 맺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한갓 이방 여성에 불과한 룻을 성경은 왜 그렇게 높이 평가하고 있는가. 그가 졸지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비참하게 된 시모 나오미를 외면하지 않고 그를 책임지려고 자기포기를 결단했기 때문이다.
룻의 자기포기의 결심이 얼마나 견고했으면 이렇게 말했을까.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이다” 룻은 자기희생의 덕목을 지닌 탁월한 여성 리더였다.
극상품 포도열매는 포기를 통하여 무르익고 룻과 같은 리더는 가족구성원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므로 가족공동체 안에 용기를 불어넣는다. 좋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 가지와 이파리를 부지런히 쳐내는 포도원 농부와 리더의 희생의 결단은 서로 닮았다. 당신은 리더인가. 무엇보다 뺄셈에 분투하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가 되라. 사도 바울은 선언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내게 유익하던 것을 벗어버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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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